백기_주시의 약속(注视之约) 데이트

【白起 · 斗兽 / 注视之约】
[백기 · 야수와 싸우다 / 주시의 약속]
_감옥/죄수 데이트 번역

※ 번역기 사용o, 의역 및 오역 있을 수 있습니다. 감안하고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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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미니에피소드 ▶ https://milkyway-b7.tistory.com/37

 

 

1.

나는 피비린내를 맡았다.

미지근한 부패감이 죽음처럼 고요한 공기를 가득 채우고, 마치 숨을 쉴 때마다 짙고 붉은색으로 물드는 듯했다.

이 견고한 감옥에는 분명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어야 할 텐데, 어떤 냄새들은 유독 뚜렷하게 느껴졌다.

 

5개월 전, 내 옆방에 "감방 동료"가 이사 온 이후로 매일 이렇다.

가끔, 나는 그가 바로 다음 순간 죽어버릴 것만 같다고 느꼈지만, 그의 생명력은 놀라울 정도로 끈질겼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깨달은 후, 나는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손목에 채워진 쇠사슬을 만지작거렸다.

 

익숙한 "찰칵" 소리와 함께, 나는 손발을 움직여 더듬더듬 철문 앞으로 다가갔다.

 

겹겹이 철문으로 봉쇄된 감옥 가장 깊숙한 곳, 오직 심야 시간에만 시스템이 모든 통제권을 갖게 된다——

 

교도관들이 문 앞에서 하품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나 또한 시스템과 연결되어 가끔 "산책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MC : ……이쪽인가?

 

나는 냄새를 따라갔고, 철문이 살짝 열리는 순간 더욱 짙은 피비린내가 확 밀려왔다.

 

그리고 내가 조심스레 고개를 내미는 순간,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 가까이 오지 마.

 

내 감방 동료는 아직 죽지 않은 거 같다.

 

이것은 내가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였는데, 목소리가 묘하게 듣기 좋았다. 마치 날카로운 단검 같았다.

 

그의 성격이 그다지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가 멀찍이 떨어진 곳에 쭈그리고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MC : 미안해요, 일부러 방해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갑자기 이런 걸 묻는 건 좀 실례지만, 너무 궁금해서요……
당신은 죽는 게 두렵지 않나요?

 

백기 : ……

 

깊고 어두운 어둠 속에서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나는 어떤 시선이 여전히 나를 꿰뚫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MC : 설 대두(*薛大头:머리가 큰 설씨/교도소장 별명)는 당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까, 그냥 대화로 풀어보는 건 어때요? 당신도 일부러 그의 삼촌을 죽인 건 아니잖아요. 이 감옥에는 소문도 많고, 들어오게 된 이유도 넘쳐나니까요.

 

듣자 하니 내 감방 동기 백기는 관찰 구역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고, 1년 전 관찰 구역 역사상 가장 큰 폭동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 폭동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죽었고, 그 중에는 설 대두 교도소장의 삼촌—— 관찰 구역의 최고 책임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백기가 "검은 쇠사슬"에 묶였을 때, 가장 적나라한 보복이 시작되었다.

날이 지나도 그의 시스템 점수는 별다른 변동이 없었지만, 교도관들도 이런 사적인 형벌을 모른 척 눈을 감아주었다.

 

백기 : 죽었으면 죽은 거지.
그리고, 내가 일부러 죽인 게 아닐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지?

 

그의 말투는 길들여지지 않은 듯 거칠었고, 내 머릿속에는 저항적이고 날카로운 그의 눈빛이 계속 떠올랐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더듬더듬 손을 뻗었고, 손끝에 축축하고 뜨거운 무언가에 닿는 순간 손목이 꽉 붙잡혔다.

 

백기 : 뭘 하려는 거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을 품은 채, 뜨거운 온기가 피부를 타고 번져나갔다.

 

나는 반사적으로 움찔했고, 그 순간 나를 가두고 있던 힘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주변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했다.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공기가 퍼졌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MC : 봐요, 다가오지 말라고 했지만, 제가 이렇게 가까이 왔는데도 당신은 절 밀어내지 않았어요.

 

백기 : 나는 장님을 괴롭히는 데엔 흥미 없어.

 

MC : 하지만, 난 당신이 생각보다 그렇게 무섭지 않은 것 같아요.

 

나는 시야를 가리는 얇은 금속 안대를 가리켰다.

 

MC :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느끼는 데 민감해요.
당신이 왜 계속 몰래 절 쳐다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시선은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백기 : ……!

 

백기는 놀란 듯 숨을 들이켰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이 숨을 죽였다.

그 순간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음에 아쉬움을 느꼈다.

 

백기 : 네가 잘못 느낀 거야.

 

그는 무언가 들켜버린 듯, 거칠게 말했다.

 

MC : 난 당신이 무섭지 않아요.
사실, 당신이 일부러 그랬든 아니든,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여긴 나쁜 사람과 범죄자들이 넘쳐나니까. 나 역시 그렇구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 온도가 순식간에 차가워진 것만 같았다.

그는 유난히 힘주어 내 손목을 잡았고, 그 안에는 마치 절대 흔들리지 않는 힘이 느껴졌다.

 

백기 : 여기엔 정말 많은 쓰레기 자식들이 있지만……
너만은 절대 아니야.

 

 

 


 

 

 

2.

나는 백기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의식이 생긴 이후로 줄곧 이 감옥 안에서 살아왔으니까.
향상도 없었고, 죽음도 없었다.

교도관 : 넌 정말이지 발전이 없구나.

6개월이라는 시간은 마치 내 좁은 인생의 윤회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기억의 영상들이 구제받을 수 없는 내 영혼을 비추고 있었다.
고여버린 죽은 물처럼 반복되는 삶은 혼란스러운 화면과 조각들로 가득했고, 신은 마치 나의 원죄를 선고한 듯 구원의 시선조차 보내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그저 구제불능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영혼 구석구석이 온통 새까만 존재.
하지만 어제, 백기는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방풍(*放风:감옥의 죄수들이 밖에 나와 바람을 쐬는 것)시간, 나는 족쇄를 찬 채 모래 위에 앉아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잘 분간할 수 없었다. 온몸을 따뜻하게 덮는 이 느낌이, 평화로운 햇살 때문인지, 아니면 생전 처음 들은 그 말 때문인지.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나는 누군가의 차분하고 익숙한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어깨 위에 가볍게 내려앉은 깃털 같았고, 바람은 한가롭게 불어오지만 줄곧 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시선이 향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의 동시에, 그는 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내가 고개를 다시 돌리자, 그 시선은 또다시 슬그머니 내게로 향했다.
백기는 아마 내가 남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그 시선을 느꼈던 순간부터, 나는 마치 비밀을 몰래 숨긴 아이처럼 처음에는 무심했다가, 점점 호기심으로,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함께 나누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열을 센 후, 장난스럽게 고개를 홱 돌렸다——

"퍽!"

나와 부딪힌 시선은 순간 당황하며 흩어졌고, 동시에 무언가 무거운 것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교도관 : 3918! 또 무슨 짓이야!

교도관의 고함과 함께, 경찰봉이 살갗을 때리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다음 순간, 희미하게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걷어차여 날아간 것 같았다.

 


MC : ......진짜로 반항하는 구나. 듣자 하니 그 교도관 갈비뼈 몇 개가 부러졌다면서요? 점수도 꽤 깎였다던데.

백기 : 때릴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네가 보고 있었잖아.

MC : 음? 그게 제가 보고 있었다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백기 : ......싸움에선, 난 절대 지지 않아.

늦은 밤, 백기는 나의 재방문을 쫓아내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것 같았다. 아마 낮에 반항한 것 때문에 또 벌을 받은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완고함이 가득 차 있었고, 마치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듯, 무심한 태도 속에 희미하게 억눌린 숨소리가 느껴졌다.

MC : 당신, 많이 아프죠?

백기 : 안 아파.

MC : 진짜요?

백기 : 거짓말해서 뭐해—— 읏.

그는 거의 순식간에 내가 몰래 찌르려던 손가락을 잡았지만, 여전히 차가운 숨소리를 삼키지 못해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백기는 여전히 내 손가락을 놓지 않았고, 떨리는 웃음이 꽉 쥔 손바닥을 따라 그의 몸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그의 목소리마저 나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백기 : 그렇게 웃겨?

MC : 아프면 아프다고 해요.

백기 : 안 아프다면 안 아픈 거야.

이 고집스러운 태도는, 왠지 귀엽기까지 했다.

백기 : 흠...... 그러니까, 너 정말 내가...... 널 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거야?

MC : 응, 어제도 말했잖아요.

둘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한참 후에야 백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백기 :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그의 목소리는 약간 풀이 죽은 듯하면서도, 어딘가 조금 부끄러워하는 듯이 들렸다.

MC : 당신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백기 : 그럼 내가 일부러 그런 거라고 생각해.

왠지 모르게  나도 뺨이 화끈거리는 것 같아, 덩달아 부끄러워졌다.
어쩐지 입꼬리가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가고, 백기의 시선이 또다시 내 얼굴에 머무르는 것 같아 온도가 계속 올라갔다.

백기 : 넌 좀 더 웃어야 해.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나는 그의 눈빛도 분명 밝을 거라고 짐작했다.
비록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의 시선 속에서 이 순간만큼은 이 세상에 아주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두 눈이 나를 다섯 달 동안 바라봐 온 삶 속에서, 어떤 익숙한 느낌이 마음속에서 솟아올라, 나는 자꾸만 의심이 들었다.

MC : 백기, 혹시 여섯 달 전에도 나와 만난 적 있어요? 이렇게 당신과 이야기 나눈 적도 있나요?

백기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백기 : 몇 번 이야기했을 뿐이야. 많다고 할 수는 없어.
네가 기억 못 한다는 건...... 아마 내가 너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존재라는 뜻이겠지.

MC : 괜찮아요. 전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아요.
당신이 있든 없든, 어차피 나는 다시 재구성될 거예요.
그러니까 이번엔, 설령 나중에 잊어버리더라도 지금은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어요.

내 말에 백기는 더욱 깊은 침묵에 빠진듯했지만, 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MC : 백기, 달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기억 속의 달은 때로는 굽은 갈고리 같고, 때로는 둥근 접시 같았어요.

백기 : 둘 다 달이야.
움직임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바뀌는 거야.

백기는 내 손을 잡아당겨, 건조하면서도 따뜻한 그의 손끝으로 내 손바닥에 한 획 한 획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렸지만, 시선은 여전히 내게 머물러 있었다.

MC : 백기, 당신 얼굴 만져봐도 돼요?

백기 : ......

나의 말이 끝나자, 뜨거운 시선이 순식간에 우리 사이를 가득 채웠다.
세상은 침묵에 잠겼고,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는 게 느껴졌다.

포기하려던 찰나, 그는 내 손을 가져가 그의 얼굴에 대었다.


손끝에 닿은 그의 피부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미세하게 떨리는 긴 속눈썹이 내 손끝을 스쳤고, 마치 드러내지 않는 말을 가볍게 가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콧대는 생각보다 더 높고 곧았으며, 절제된 숨결은 얇은 입술과 함께 가늘고 긴 선으로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윤곽이 뚜렷한 턱 선은 팽팽하게 긴장했지만, 귓불은 한없이 부드러웠고, 열기가 손끝을 통해 천천히 스며들어 마치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손가락 끝 아래의 근육이 내 손길에 따라 끊임없이 수축하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민감하고, 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진실함을 담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이렇게 만져본 적이 없었지만, 동시에 마치 누군가에게 만져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순간, 백기는 오히려 나를 보지 않았다.

MC :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오래전에, 난 당신을 본 적이 있어요.
당신이 관찰 구역을 폭파시키는 모습을 봤어요.

나의 혼란스러운 기억 속에는, 산산조각 난 많은 장면들이 있었다.
그 기억들이 얼마나 오래전의 일인지 분간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완고하게 내 기억 영상 속에 남아있었다.

백기 : 어떤 모습이었는데?

MC : 불꽃이 엄청 많았고, 당신은 불길 속에 서 있었어요.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고, 온몸은 상처투성이였지만, 곧게 서 있었구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주 단호하게 어딘가를 향해 두 발을 쐈어요.

백기 :  네가 말하는 건 아마 관찰 구역의 지휘부일 거야.
들어가는데 애는 좀 먹었지만, 부수는 건 꽤 쉬웠어.

그리고?

MC : 당신이 한 일이잖아요, 왜 나한테 물어봐요?

백기 : 네가 본 것들을 듣고 싶어.

MC :  그리고...... 당신 눈을 봤어요.

한 쌍의 무관심하면서도 확고한 눈. 모든 불꽃을 태워 없애 투명한 호박으로 응축시킨 것 같았다.

마치 그 무엇도 그를 흔들 수 없고, 그 무엇도 그를 꺾을 수 없는 것 같았다.

MC : 많은 사람들이 당신 뒤를 따르는 것 같아서, 나도 조금 뛰고 싶었어요.

백기 : 그냥 시끄럽고 귀찮은 녀석들일 뿐이야.

MC : 그 사람들과 싸우기도 해요?

백기 : 싸우지 않으면 어떻게 알겠어.

MC : 그럼 그 사람들이 당신을 이길 수 있어요?

백기 : 못 이겨.

MC : 그래서 친구가 된 거예요? 

백기 : 그냥 그들이 다가온 것 뿐이야.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목소리는 부드러워져있었다.


그 후에도, 백기는 십 대 때부터 관찰 구역에 있었다는 이야기,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수많은 싸움을 했다는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나도 그에게 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뒤섞인 조각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치 내가 세상을 만지는 신기한 촉수처럼. 
그는 나와 같다고 말했다.

MC : 백기, 왜 관찰 구역을 부수려고 한 거예요?

백기 : 그곳은 나를 가둘 수 없으니까.

그 목소리는 고집스럽고 밝았으며, 나를 깨끗하게 갈라,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어둡고 두려운 것들을 드러냈다.
나는 이토록 분명하게, 내 앞에 있는 이 사람과 내가 얼마나 다른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MC : 정말 멋져요. 당신들은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백기 : 당신들?

MC : 음, 전에 빛을 내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어쩌면 당신들과 꽤 닮았을지도 몰라요.

백기 : 다른 사람도 기억해?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백기는 뭔가 경계하는 듯했다.

MC :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림자처럼 흐릿해요.
그날은 날씨가 정말 좋았고, 그는 커다란 벽을 향해 뛰어올랐어요. 마치 날개가 돋아나서 하늘로 날아오를 것처럼.

백기 : 나도, 널 데리고 날 수 있어......

내 말투에서 갈망을 느꼈는지, 무심코 내뱉은 말은 꼬리를 흐리며 점점 희미해졌다.
침묵의 시간이 소리 없이 길어지고, 한참 후에 백기가 입을 열었다.

백기 : MC, 네 소원은 뭐야?

나는 잠시 생각하다 그를 바라보았다.

MC : 꼭 하나 말해야 한다면, 나는 이 세상을 보고 싶어요.

 

 

 


 

 

 

3.
사실 그건 내가 진정 바라는 소원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겁쟁이일 뿐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 백기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더 이상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 시선 하나하나 속에서, 내가 몰래 그에게 다가갔던 많은 밤들 속에서, 분명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백기는 왠지 모르게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 같았다——

나 자신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귀를 찢는 듯한 경보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급박한 발소리와 금속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사방에서 소란스럽게 들려왔다.

내 마음속에는  불길한 예감이 점점 스며들기 시작했고, 모든 죄수들이 긴급히 방으로 압송될 때, 나는 그 시선을 찾을 수 없었다——

백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깊은 밤, 감옥 안은 죽은 듯이 고요했고, 마치 내 추측을 증명이라도 하듯 침묵에 잠겼다.

그는 대체 뭘 한 거지? 혹시 또 무슨 끔찍한 처벌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이곳 역시 그를 가둘 수 없어서,  시스템 평가를 앞둔 지금, 탈옥에 선공한 걸까?

불안과 의심이 내 마음 속을 가득 채웠다. 나는 이 답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마주하게 될 진실이 두려웠다.

결국 나 혼자 이곳에 영원히 머무르게 되는 걸까?

깊고 어두운 심연의 끝에서, 나는 어쩐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그의 고집스러운 얼굴을 본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 고요해졌다.

나는 감옥 구역의 철문 앞에 서서,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속에서 어떤 낯선 힘이 거칠게 요동치며 연결점을 찾으려 했고, 나는 내 눈동자가 떨리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수많은 희고 빛나는 선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 마침내 한데 모여 겹쳐졌다.

MC: ......성공했어.

나는 내 의식을 시스템과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이건 단지 내 추측일 뿐이었지만, 이렇게 순조롭게 될 줄은 몰랐다.

"눈을 뜬"순간, 많은 장면들이 보였다.

매달린 조명이 흔들리며 발목에 채워진 썩은 족쇄를 비추고, 탁한 액체가 주사기를 통해 천천히 동맥 속으로 주입되는 모습.

철창 너머로 보이는 순찰 경관들은, 깜빡이는 음성 감지 조명 아래에서 흐릿한 허상처럼 보였다.

지금 이 순간, 감옥 안 모든 사람들의 눈이 바로 나의 눈이 되었다.

——이게 바로 시스템의 '주시(注视)'라는 거겠지.

머릿속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퍼졌다. 나는 위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시큼한 냄새를 억지로 삼키며,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마침내 구속 장치로 덮인 뒷 모습을 보았다. 

......혹시 백기일까?


나는 문 앞에 있는 교도관의 기억을 그의 시야에 "입력"한 뒤, 문을 열고 달려나갔다.

높은 주파수의 경보음이 날카롭게 뇌리를 찔렀고, 시야는 붉은 핏빛으로 가득 찼다.

나는 허둥지둥 뛰어가는 교도관들을 지나, 조작된 시선들을 스쳐 지나갔다.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지만, 내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처음 느껴보는 용기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벅참과 흥분이 온몸을 채웠다.

이게 바로 나쁜 짓을 하는 기분일까.


특수 형벌실의 철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익숙한 시선이 곧장 나를 향해 꽂혔다.

쇠사슬이 바닥을 가볍게 긁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시스템 연결을 해제한 후, 철창 앞으로 걸어갔다.

MC : 당신 정말 제대로 한 건 터뜨렸네요. 이런 구속장치까지 착용하고 있다니.

나는 바닥에 반쯤 웅크려 앉아, 그의 눈가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백기 :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는 얼굴의 구속 장치를 벗겨내며, 내 손목을 꽉 붙잡았다.

MC : 나쁜 짓을 하고 싶어서요. 인생 첫 나쁜 짓이라 그런가, 조금 즐거운 거 같기도 해요.
이게 바로 나쁜 사람이 되는 기분일까요?

나는 그의 손을 감싸 쥐고, 도발하듯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백기 : 철창을 열어준 게 나쁜 짓이야?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내 손을 맞잡았다. 목소리는 어딘가 무심한 듯했지만, 그의 손가락 끝은 내 손가락 사이로 깊숙이 파고들어, 나를 놓지 않았다.

백기 : 그렇게 나쁜 사람이 되고 싶어?

MC : ......

나는 이런 백기를 본 적이 없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계속 팽창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MC : 나쁜 사람이 되는 게 내 정체성에 더 어울리는 거 같아요. 그리고 내게는 그럴 능력도 있구요.

어쩌면 진작에 이렇게 했어야 했는지도 몰라요.

이 세상이 나에게 내린 판결을 인정하고, 나의 멈춰버린 저항과 몸부림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진작에 인정해야 했다——
내가 바로 이 세계의 "불량품"임을.

백기 : 그래?

내 대답에, 백기는 그저 담담하게, 단 두 글자만 내뱉었다.

순간, 그가 내 손을 잡아당겨 철창 스위치에 가져다 대는 것이 느껴졌다.
극도로 위험한 압박감이 밀려와, 등줄기가 본능적으로 굳어버렸다.

백기 : 열어.

명령과 같은 소리가 내 귓가에 꽂히고, 거의 본능적으로 전류가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딸깍"

손끝에 느껴지던 온기가 한순간 사라졌다가, 다시 느릿느릿한 발걸음 소리를 따라 내 주변을 감쌌다.

경보음이 머리 위에서 울려 퍼지고, 내 심장은 맹수의 우리를 연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뛰었다.

가슴이 타들어갈 것만 같아, 나는 숨을 쉬기 위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MC : ...... 제 말이 틀렸어요?

백기 :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MC : 그럼 뭐가 중요한데요?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의 대답을 간절히 듣고 싶었다. 어쩌면, 그게 내가 줄곧 찾고 있던 종착점일지도 모르니까.

그때, 나는 그가 가볍게 웃는 소리를 들었다.

뜨거운 숨결이 가까이 다가오는 듯, 주위의 공기까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마치 깃털이 내 입술을 스치는 듯했지만, 그것은 착각인 듯 다음 순간 곧바로 사라져버렸다.

MC : 왜 말이 없어요? 뭐 하는 거예요?

백기 : 정말로 중요한 나쁜 짓을 했어.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대답에 나는 의아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MC : 당신을 여기에 가둔 것처럼, 이번에도 그런 나쁜 짓을 한 거예요?

백기 : 방금 한 게 더 악랄해.

그의 말에는 웃음기가 가득했고, 따뜻한 손바닥이 내 얼굴을 감쌌다.

백기  : 오후에 한 일은 별거 아니야.

내 계획과 거의 비슷해.

다음 순간, 무언가가, 내 안대를 스치며 꽂힌 것 같았다.
그가 힘껏 잡아당기자, 어두컴컴했던 세상에 현기증 날 정도로 눈부신 흰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흐릿한 색의 덩어리들이 빠르게 얽히더니, 마치 깨진 유리조각들이 다시 맞춰지듯, 천천히 선명하고 생동감 넘치는 얼굴을 만들어 냈다.

 

백기 :  난 단지 네 소원을 들어주고 싶을 뿐이야.

 

 

 


 

 

 

4.
나는 눈앞의 백기를 바라보며, 충격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 오만한 얼굴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선명하게 내 눈에 아로새겨졌고, 나는 마침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MC : ......어떻게 한 거예요.

백기 : 설령 이 세상의 모든 땅이 시스템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해도, 모든 일들은 결국 인간이 하는 거야.
뼈 몇 개쯤 부러뜨리면, 누군가는 알게 되어 있지.
이곳 관찰 구역에서는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야.
지난 몇 달 동안, 그냥 맞고만 있었던 건 아니야.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고, 나는 무심코 입을 열었다.

MC : ......당신도 뼈가 부러진 적 있어요?

백기 : 내 뼈는 부러지지 않아.

반짝이는 두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마치 영혼까지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정말 이 사람을 영원히 잊고 싶지 않다고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내일은 점수 갱신 일이다. 나도 백기도, 점수가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백기는 지난 두 달 동안 점수 하락 판정을 받았으니, 이번에 우리는 모두 재구성되고, 서로를 잊게 될 것이다.

방금 전의 동기화는 거의 내 모든 힘을 소모시켰고, 나는 다시 시스템에 침입해 좀 더 세밀한 데이터들을 삭제를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백기를 바라보았다.

MC : 백기,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요?

백기 : 난 언제든 나갈 수 있어.

'그런데 왜 아직도 안 나간 거예요?'

나는 무심코 말을 내뱉을 뻔했지만, 잠시 생각하다 이내 다시 삼켰다.

그 단호하고 자유분방한 얼굴이 내 눈에 깊이 새겨져, 나는 자꾸만 그를 쳐다보았다.

MC : 그런데, 예전에 당신은 왜 나를 잊지 않았던 거예요?

백기 :  얌전했으니까.
사실 규칙을 지키는 건 쉬워. 내가 지킬 마음만 먹으면 되는 거니까.

MC : 그러니까...... 내가 얌전해서라구요?

내가 그렇게 물어볼 줄은 예상 못 했는지, 그는 살짝 기침을 하더니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돌려버렸다.
하지만 빨갛게 달아오른 그의 귀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MC : 더 안전하게 탈출할 방법이 있어요.
해볼래요?

그가 잠시 멈칫하는 순간, 나는 손을 뻗어 그의 눈을 어루만졌다.

홍채 위에 설치된 장치가 즉시 명령을 받아들였고, 그의 시선을 잠시 붙잡는데 성공했다——
나는 그 틈을 타 수갑을 그의 손목에 채웠고, 그를 의자에 밀어 앉혔다.

백기 : 이게 네 방법이야?

MC : 당신은 분명히 날 막을 테니까,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쇠사슬을 그의 허벅지에도 함께 채웠다.
백기는 아마 매우 강할 것이다. 그러니 내일 "심판"이 오기 전까진 절대 그를 풀어줄 수 없었다.

MC :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시스템의 감시 속에 있고, 우리의 점수도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시스템은 개입하지 못해요. 왜냐하면, 시스템도 스스로 만든 규칙에 얽매여 있으니까요.
내일이 바로 심판일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이미 눈치챘어야 했어요. 내가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는걸.

백기 :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네가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 한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MC : 당연히 상관있죠!
나는 당신에게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당신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잖아요.
어떻게 내가 밤마다 수갑과 철문을 열고 당신에게 올 수 있었는지,
어떻게 여길 떠나지 않고도 관찰 구역의 당신을 볼 수 있었는지,
어떻게 이유도 없이 그런 장면들을 볼 수 있었는지 묻지 않았어요.
그것들에게는 어쩌면 또 다른 이름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 이름을 나는 감히 추측하거나, 인정할 수도 없었다.

백기 :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그 목소리에서 마치 어떤 용서를 들은 것만 같았다.

MC : 나는 내가 왜 그런 것들을 볼 수 있는지도 모르고, 제어할 수도 없어요. 어쩌면 나는 미친 사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분명한 건, 그런 장면들을 본 순간부터 시스템은 계속해서 그것들을 기록하고 분석해왔어요.
시스템은 모든 일이 일어날 때,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계산하고 있어요.
만약 내 머릿속의 그런 장면들이 없었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 거예요.

어쩌면, 백기도 잡히지 않고 그의 동료들과 함께 더 멀리, 더 자유로운 곳으로 도망쳤을 지도 모른다.

백기 : 넌 두려워하고 있어.

그의 눈빛이 위험하게 빛났다. 분명 갇혀 있는데도, 마치 누구도 가둘 수 없는 야수처럼, 언제든 족쇄를 풀고 내 목을 물어뜯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얼어붙은 채 그 자리에 서서, 백기가 한 글자 한 글자 입을 여는 것을 바라보았다.

백기 : 넌 그것들을 두려워하고 있어. 그래서 네가 불안정한 거야.
너는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어.

안개가 자욱한 어두운 숲, 나는 불안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세상은 내 눈을 가렸다. 어느 방향이든 마치 낭떠러지인 것 같았다.

백기 : 그 점수들은 널 평가할 수 없어.
그런 것들은 네 죄가 아니야.

마치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아, 내 눈가도 희미하게 뜨거워지는 듯했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낭떠러지 아래로 뛰어내릴 용기를 갖게 된 걸지도 모른다.

백기 : 정말 나를 가둘 거야?

MC : 차라리 정말로 가둘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는 웃으면서, 그의 얼굴에 구속 기구를 씌웠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그의 아름답고 길들여지지 않은 눈동자를 깊이 바라보았다.

MC : 당신 말이 맞아요. 점수 따위론 우리를 평가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번엔 내가 모든 걸 결정할 거예요.
백기, 사실 내 진짜 소원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예요.
바람이 되고 싶어요. 어디든 갈 수 있잖아요.
당신이 내 소원을 들어줄 거죠?

나는 몸을 숙여, 차가운 구속 장치에 얼굴을 대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문득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내 첫사랑은 피비린내가 묻어 있었다.

정신을 다잡기 위해, 나는 다시 안대를 쓰고 기억 데이터를 복구하려 애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교도관들은 밤새도록 시스템의 일시적인 혼란을 수습하느라 분주했고, 그 외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시스템 : 기억 재구성 시스템 준비 완료.

다른 죄수들은 약물을 통해 기억을 지운 뒤, 영상으로 기억을 주입받아야 했지만, 나의 기억 재구성 과정은 오히려 훨씬 간단했다.
아마도 내 이십여 년간의 기억들은 너무도 반복되어 있었고, 동시에 시스템도 내 뇌를 완전하게 스캔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검은 구체가 내 뒤에 떠 있고, 나는 차가운 금속 의자에 앉아 머리 위의 기계가 전류를 따라 점점 내 의식과 겹쳐지는 것을 느꼈다.
수없이 많은 희미한 흰색 선들이 어둠 속에서 쉴 새 없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나는 의식의 흐름을 거슬러 끊임없이 오르며, 빛이 없는 심연을 향해 나아갔다——

그래, 지금이야말로 내가 시스템에 가장 가까워진 순간이자, 내가 시스템과 완전히 융합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이렇게 하면 나는 그것과 하나가 되어 모든 것을 수정하고 통제할 수 있다, 백기를 포함해서.

점수로 그를 평가할 수 없지만, 그를 자유롭게 해줄 수는 있다. 그에게 이 모든 것을 파괴할 방법을 찾을 기회를 줄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내 소원도 이루어지는 셈이겠지.

나는 내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정말 바람이 된 것처럼, 빛의 길을 따라 조금씩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콰앙——!"

갑작스러운 충격음과 함께, 온 세상이 진동하는 것 같았다. 나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고, 다음 순간 모두와 함께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검은 철문을 따라 화약 연기가 피어오르고, 늠름한 그림자가 무언가를 끌며 냉랭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손을 휘둘러 피로 물든 형체를 옆으로 내던졌고, 날카로운 핏빛 안개가 흩뿌려졌다.

MC : ...... 백기......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처럼 몰려왔다. 나는 당황하며 그 그림자가 날렵하게 공격과 총알을 피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홀 안에는 그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서 있는 형체가 없었다.

MC :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여긴 감옥이라구요!

백기 : 딱 맞춰 온 것 같네.
아직 날 잊지 않았구나.

그는 무심하게 내게 말을 건네며, 나를 번쩍 들어 어깨에 짊어졌다.

MC : 당신 미쳤어요?!

백기 : 괜찮아, 원래 오늘 움직이려고 했어.
다만 네가 먼저 선수칠 줄은 몰랐네.

 


백기는 경보 소리 속에서도 능숙하게 걸음을 옮기며, 감옥 복도를 빠르게 지나갔다.
그가 철문을 발로 차 열었고, 그 너머로 훨씬 더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천장은 어둠 깊숙한 곳에 높이 매달려 희미하고 차가운 빛을 내고 있었고, 긴 계단은 앞으로 뻗어있어 발아래로 끝없는 심연이 펼쳐졌다.

나는 이 감옥에 이런 곳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

백기 : 네가 한 가지  틀린 게 있어. 네가 본 화면이 없었더라도, 난 여기 왔을 거야.
아는 사람이 여기에 갇혀 있거든.

MC : 여긴...... 어디예요?

백기 : 죽은 이들의 기억 저장소.

그는 조심스럽게 나를 내려놓았지만,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백기 : 죽은 죄수들은 재로 변해도 벽으로 만들어져, 모든 인생을 여기 남기고, 시스템이 저장하고 분석하게 돼.
죽어서도 이곳을 벗어날 수 없어.
내 친구도 여기에 있어. 난 그를 자유롭게 해줄 거야.

MC :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을 자유롭게 해줄 건가요.

백기 : 나는 상관없어.
시스템을 부수고 싶은 것도 인류를 위해서가 아니야.

그의 깊은 시선이, 언제나처럼 나를 향했다.

백기 : 난 단지, 네가 나를 기억해 주길 바랄 뿐이야.

바람 한 점 새어들 틈 없는 깊은 심연 속에서, 마치 무언가가 내 마음을 스치는 듯, 내 심장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러더니, 그것은 천천히 백기의 목소리로 변해갔다.

백기 : 넌 바람이 되고 싶다고 했어. 사라지고 싶다고 했지.
그럼 나와 함께 하자.

그의 목소리가 떨어짐과 동시에, 그는 갑자기 내 허리를 끌어안고 심연 속으로 뛰어내렸다——

바람 소리가 귓가에서 찢어지는 듯 울부짖었고, 온 세상이 미지의 어둠을 향해 가속하며 나아갔지만, 더없이 단단한 심장 소리가 줄곧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쿵 쿵"
"쿵 쿵"

곧이어, 거대한 굉음과 함께 나는 눈을 떴다.

타오르는 불길이 백기의 눈동자를 물들였고, 너무나도 강렬하고 눈부셔서, 한 번 쳐다본 것만으로도 도저히 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순간, 나는 그 안에서 나의 그림자를 보았다. 호박색의 나 자신을.

순간, 추락의 충격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부드러운 무언가에 몸이 세게 부딪혔다.

거대한 완충력은 마치 보이지 않는 파도처럼, 내가 튕겨 오르는 찰나에 나의 의식에 거대한 공백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백기는 더욱 힘껏 나를 품에 안았고, 여러 번 튕겨 오른 후에야 천천히 멈춰 섰다.

MC : ...이, 이건 또 뭐예요?

백기 : 미리 준비해 둔 거야.
공기를 채우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하거든. 처음에는 이걸 쓸 거라곤 생각 못 했어. 원래 계획에는 폭파시키고 난 뒤에 바로 떠날 생각이었거든.

나는 멍하니 그가 나를 잡아끌어 땅으로 뛰어내린 후, 익숙하게 기계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밤의 여운은 아직 하늘에 남아있었고, 하늘은 옅은 회백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수평선에는, 옅은 금빛 광채가 조용히 떠오르며, 미세하지만 완고하게 어둠의 경계를 찢고 있었다.

MC : 여기서 이렇게 나가고 나면, 우린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본 적 있어요?

백기 : 일단 점수는 마이너스 몇백 점쯤 되겠지.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조금은 나른하게 팔을 쭉 뻗었다.

백기 : 아마 네가 한 방법이 가장 옳았을 거야.
하지만 난 싫어.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낼 거야.
죽음 대신, 내가 널 자유롭게 해 줄 거야.

옅은 금빛 광채가 어깨와 온몸을 따라 그의 뒤에 쏟아져 내렸고, 마치 빛의 망토처럼, 아침 바람을 따라 높이 솟아올랐다.

MC : ......왜 굳이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 거예요. 그 방법이 훨씬 더 간단하고...... 쉬운데......

백기 : 왜냐하면 네가 나에게, 도와달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그는 조용히 빛 속에 서서, 온 세상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백기 : 널 좋아하니까, 아직은 네 소원을 이뤄줄 수 없어.
난 널 구할 거야.

그는 내 손을 잡고, 그 거대한 벽을 향해 높이 날아올랐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백기의 얼굴과 그 흐릿한 그림자가 겹쳐지는 것을 보았다——

어디에서 불어왔는지 모를 바람이 우리를 힘껏 들어 올렸다. 세상이 두 손으로 우리를 감싸는 것처럼.

나는 정말 백기와 함께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백기 : 가자, 포기하지 마.
우리 이 세상과 끝까지 맞서 싸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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