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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_一瞬或一生(순간 또는 일생)

꼬꼬마양파 2025. 2. 3. 19:26

白起 · 一瞬或一生

[백기 · 순간 또는 일생]

_25년 춘절 데이트

 

 22년 백기 생일 데이트 보고 읽으시면 감동이 두 배 ^_T

게임플레이 같이 하면서 읽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브금이 정말 사기거든요... 아지에씨 연기가 정말 장난 아니거든요...ㅠㅠ

(feat. miss you 엄백기)

 

※ 번역기 사용o, 의역 및 오역 있을 수 있습니다. 감안하고 봐주세요 :)

 

 

 

Chapter 1

총알이 빗발치는 폐허와 불길 속을 지나 도착한 곳엔, 오직 참호에서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백기만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를 본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나는 그에게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참을 수 없어 직접 그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불길이 하늘로 치솟고, 빛의 기둥이 연기 속을 뚫고 지나갔다.

 

핏빛 석양 아래, 나는 백기를 보았다.

 

연기와 먼지가 그의 온몸을 뒤덮고 있었고, 그는 폐허의 어둠 속에 숨어 한곳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내 심장은 쿵쾅거리며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잊어버린 채 비틀거리며 그를 향해 달려갔다.

순간, 차가운 총구가 경계하듯 돌아갔고— 나는 한 쌍의 어리둥절한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동공은 순간적으로 확장되었고, 몸은 미세하게 떨렸다.

어둠과 적막함 속에서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한 순간 뿐이었다.

그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고,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멀리 사라졌다.

 

MC : …! 선배!!

 

폭발하는 총성과 비명이 내 모든 소리를 덮어버렸고, 울음소리와 불타는듯한 분노가 한데 뒤섞였다.

모든 공격이 마치 백기에게만 집중되는 것 같아서, 나는 엄폐물 사이로 계속해서 이동할 수 있었다.

 

내 옆으로 불꽃이 쉴 새 없이 터졌고, 온몸이 두려움으로 인해 본능적으로 떨렸다.

 

 

얼마나 오래 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평생의 운을 다 써버린 것처럼, 마침내 폐허의 한 구석에서 그를 발견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동공이 격렬하게 수축되었고, 급히 돌아서며 겨누고 있던 총구가 갑자기 기울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감싸고 허리를 살짝 굽혔고

날카롭고 차가운 궤적이 내 귓가를 스치고, 세상은 순간 정적에 잠겨 가슴 속에서 튀어나올 듯한 심장 소리만이 남았다.

그는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고, 총을 쥔 손엔 핏줄이 희미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백기 : 왜 네가…!!

 

그는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려다 도중에 멈췄다.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잠시 멍하니 눈을 한 번 깜빡이곤 이내 고개를 저으며 보기 힘든 웃음을 지었다   

 

백기 : …정말 미쳤어.

 

그의 몸은 온통 험악한 상처들로 가득 차 너덜너덜했고, 마치 상처 입은 야수가 경계하는 것 처럼 보였다.

내 마음은 한데 엉켜, 그 어둡고 경계하는 시선 속에서,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그의 숨결과 함께 밀려왔고, 겨누었던 총구는 여전히 그대로인 채, 그의 시선은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눈물이 터질까 두려워, 그의 상처를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미동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따뜻하고 끈적이는 감촉이 손끝에 닿았고, 그는 내 손길에 순간 움츠렸지만 이내 그리운 듯 몸을 기대어왔다.

 

MC : 아파요?

 

백기 :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둡고 우울한 빛이 가득 담긴 곧은 시선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았다.

 

백기 :…넌 여기 있으면 안돼.

 

MC : 하지만 선배가 여기 있잖아요.

선배가 돌아오지 않아서, 제가 직접 찾으러 왔어요.

 

그 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고, 갑자기 건물 밖에서 거대한 바람벽이 솟아 올랐다.

 

급격한 바람은 마치 포효하듯, 하늘과 땅 사이에서 굉음을 내며, 화약 연기마저 휩쓸어 견고하고 어두운 벽을 만들어 냈다.

 

이 어두운 장벽 속에서, 백기는 나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는 내가 아파할 정도로 두 팔로 힘껏 껴안았다.

 

포옹이라기보다는, 마치 나와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처럼 느껴졌다.

 

MC : 선…

 

내가 말하려는 순간, 그는 갑자기 내 뒷머리를 눌렀고, 이윽고 거칠고 간절한 키스가 내 입술에 떨어졌다.

 

그는 거침없이 다가왔고, 이가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녹 냄새가 그의 향기와 함께 혀 끝에서부터 혀 밑까지 퍼져, 나를 떨리게 만들었다.

 

그는 끊임없이 팔을 당겨 나를 그의 쪽으로 힘껏 밀어붙였다.

 

나는 이 혼란 속에서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황홀감 속에서, 흐릿하고 거친 숨을 크게 내쉬며 그는 마침내 반쯤 물러섰다.

 

마치 반투명한 은색 실 한 가닥이 나와 그를 잇고 있는 듯했지만, 너무도 가볍고 얇아서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

 

바람 속에서,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백기 : … 그럼 조금만 더 내 곁에 있어 줘.

 

 

 


 

 

 

Chapter 2

그리움은 마치 혼란스러운 전쟁의 불꽃처럼 영원히 멈추지 않는다.

백기의 몸은 온갖 심한 상처들로 가득했지만, 열악한 환경 때문에 붕대로 아주 기본적인 응급처치만 할 수 있었다.

그의 가슴을 애타게 어루만지려던 순간,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칼이 내 몸을 꿰뚫었다.

어둠이 조용히 내려앉고, 흩날리는 불꽃은 때때로 세상을 대낮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백기는 나를 보호하며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왔고, 건물 구석구석을 신중하게 살펴본 뒤, 내 손을 잡고 벽에 기대어 군용 위성 전화를 꺼냈다.

 

백기 : B-7, 3단계 지정좌표에 도달. 이상 없음.

 

그의 이어폰을 통해 무언가가 전해져 왔고, 그는 한쪽 다리로 반쯤 몸을 지탱하며, 호흡을 조절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곧 좋은 소식을 들은 듯, 백기는 마침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MC : …괜찮아요?

 

그는 눈을 깜빡이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무디게 돌렸다.

왠지 모르겠지만, 분명 그의 두 눈은 나의 모습으로 가득한데도, 혼란함으로 가려져 초점을 잃은 것 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그의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

 

백기 :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

 

그는 과거에 무수히 그랬던 것처럼 손을 들어 내 얼굴을 어루만지려 했지만, 그의 손가락 끝은 공중에서 잠시 멈췄다가 천천히 떨어질 뿐이었다.

 

하지만 백기는 곧 손을 거두고, 걸려있던 물통을 들고 허리에 찬 작은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그는 먼저, 이미 핏자국으로 더러워진 옷을 간단히 잘라내 상처 부위가 잘 보이도록 드러냈다.

팔, 어깨, 허리, 허벅지… 끔찍한 흔적들이 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나는 눈물을 참으려 손가락 끝이 손바닥에 세게 눌릴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물통의 물을 조심스럽게 쏟아내며 상처 주위의 모래와 파편들을 씻어냈다.

긴장된 근육과 함께 억제된 호흡이 본능적으로 수축하며 떨렸고, 검은 피가 어두운 길을 만들며 흘러내렸다.

그의 보기 좋은 눈매는 눈 한번을 찡그리지 않고, 침착하고 깔끔하게 동작을 반복했다.

 

심지어 그는 두 손과 발을 움직여 보기까지 했는데, 상처에서 피가 더 많이 솟구쳐나오는 걸 보며 자신이 아직은 더 움직일 수 있다는 듯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 시선을 느낀 그는 무언가에 찔린 듯 잠시 흠칫하더니, 다음 순간 손을 들어 내 눈을 가렸다.

 

백기 : 보지 마. 보기 흉해.

 

MC : …그렇지 않아요. 보기 흉한 게 아니에요…

 

나는 손바닥으로 가리고 있는 그의 손을 힘껏 잡았다. 심장이 욱신욱신 아팠다.

 

백기 : 내가 잘못 말했어, 좀 무섭긴 해.

 

MC : …하나도 안 무서워요.

 

백기 : 내가 무서워.

 

네가 아파하고 슬퍼하는 눈을 보는 게 무서워, 꿈과 그리움이 너무 현실적일까 봐 무섭고, 내가 너무 빠져들게 될까 봐 무서워.

 

천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고, 나는 그의 손을 들어 올리며 그가 상처에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MC : 제가 도와줄게요, 괜찮죠?

 

그의 손가락 틈 사이로,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너무 많은 감정들이 짙고 강렬하게 뒤엉켜 마침내 그의 손바닥이 천천히 붕대를 건네주었고, 타협하듯 팔을 뻗었다.

나는 마음이 아프고 화도 났지만, 그의 상처를 아주 조심스럽게 감쌌다.

 

사실 여기 남아서 이런 일을 해서는 안됐지만, 그가 이렇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그가 이미 상처투성이인 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MC : …선배, 제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알아요?

 

백기 : 날 데리러 왔다고, 좀 전에 네가 말했잖아.

 

MC : 그게 아니라 제 말은, 제가 왜 여기 선배 앞에 있냐는 거에요.

 

나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차분하고 신중한 눈빛 속에서, 지금은 왜 내가 나타난 것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걸까?

 

백기 : 왜냐하면… 네가 여기에 있기를 바랐으니까.

내가 널 너무 보고 싶어하니까.

 

MC : 제가 선배 앞에 있는 게 믿어지지 않나요.

 

백기 : 불가능해.

나 말고는 아무도 널 이곳으로 데려올 자격이 없어… 아니, 나도 없어.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무슨 생각이 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백기 : …넌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있어야 해. 오늘은 날씨가 아주 좋을 것 같으니까, 아래층 과일가게의 과일화채를 먹으면서 방금 업데이트된 예능 프로그램도 보고. 여기 있을게 아니라.

 

MC : 그럼 지금 전 뭐죠?

 

백기 : 전부다 너야. 하지만 아냐.

 

그의 말은 가볍고 확실해서, 터무니없이 혼자 대화하는 것 처럼 들렸다.

 

MC : 그럼… 그다음엔 뭘 하고 싶어요?

 

백기 : 고립된 평화유지군 3명을 찾으러 가야 해.

……현지 주민들을 대피시키다가 고립된 평화유지군을 구해야 해.

응… 본 부대와 합류해야 해.

…대피 경로에 화력을 집중해서, 전원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엄호해야 하고.

 

그는 마치 서로 다른 시간대의 임무를 설명하는 것처럼 띄엄띄엄 끊기듯 말하며, 서로 연결되지 않는 조각들을 만들어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의 뺨을 어루만지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MC : 다른 사람들은요? 선배 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어요?

 

백기 : 대장… 아니, 명(铭)형이 10시 방향에 있어. 해공이 루일을 데리고 앞에 있고, 항저와 아율이 2시 저격지점에서 천천히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어.

…그리고 부대장 …나는 팡 부대장님이랑 합류했고, 소국도 그와 함께 있었어.

모두… 모두다 여기 있어.

 

깊은 한숨과 함께 그의 눈가가 천천히 펴지며, 희미한 미소가 드러났다.

 

MC : 좋아요. 나중에 그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요.

우리 이곳을 떠나요.

 

백기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더욱더 미소 지었다.

 

백기 : 응, 집에 갈 거야.

네 곁으로 돌아갈 거야.

 

그는 나를 더욱 꽉 껴안고, 얼굴을 가까이 대며 내 얼굴에 부드럽게 비볐다.

 

백기 : MC, 나 보고 싶었어?

 

MC : 보고 싶었어요. 매일매일, 매 순간마다 선배를 생각했어요.

잘 지내고 있는지, 잘 쉬고 있는지, 다친 곳은 없는지…

 

백기 : 내가 널 보고 싶어 하는지는 안 궁금해?

 

MC : 제 생각은 하지 마요.

 

나는 그의 눈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그에게 가볍게 키스했다.

 

MC : 전 그냥 선배가 제 곁으로 돌아와 주기만 하면 돼요. 제 앞에서 천천히 생각해도 되요.

 

백기 : 일찍이 너와 약속했지만… 소용이 없었어, 내 명령을 듣지 않았어.

…어떻게 해서든, 나는 늘 네 곁으로 돌아갈 거야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살짝 숙여 내가 키스했던 그의 윗입술로 살짝 눌렀다.

 

백기 : MC, 안아줘.

 

붕대에서 희미하게 스며 나오는 피를 보며, 나는 그의 등을 살며시 감싸 안았다.

 

백기 : 아무 느낌도 안 나는 것 같아. 너무 대충 안아주는 거 아냐?

 

MC : 선배가 아플까 봐 걱정된다고요!

 

나는 웃기면서도 속상해서 그를 한 번 흘겨보고는, 조금 더 힘을 주어 그를 꼭 안았다.

 

백기 : 그럼 한 번 더 키스해줘.

 

그의 입술은 이미 내 입술에 닿아있어, 그의 말끝은 약간 축축하고 끈적한 느낌이 묻어났지만, 그는 여전히 그렇게 말했다.

 

그 깊은 시선 속에서, 나는 그를 따라 그의 혀끝을 머금고 그의 모든 구석구석을 사랑스럽게 확인했다.

 

MC : 이렇게요?

 

백기 : 부족해.

좀 더 키스해줘.

 

그를 향해 좀 더 깊이 몸을 기울여 다가갔을 때, 나는 눈을 감기 아쉬웠고, 아마 그도 그랬을 것이다.

 

가늘게 반쯤 뜬 그의 눈은, 맑고 투명하면서도 흐릿했다.

그런 모순된 시선 속에서, 나는 모든 것이 벗겨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매번 파고들면서 점점 더 커지며 부풀어 오르는 어둡고 불안한 감정들을 단 한 순간도 멈출 수 없는 듯 참아내는 것 같았다.

 

어느새 그는 천천히 주도권을 되찾으며 만족하지 못한 듯 손가락 끝으로 아래쪽을 어루만졌다.

자제력을 잃었다기 보단, 일종의 절제된 탐닉에 가까웠다.

 

빛이 없는 어두운 구석에서 그림자들이 한데 뒤엉켰고, 마치 강 위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달처럼, 고요함 속에서 오직 겹쳐진 가는 물소리만이 들렸다.

 

바람이 수면을 스치자 달그림자가 파도 치고, 달이 주름져갔다.

 

숨길 수 없는 가쁜 숨소리가 입으로 삼켜졌고, 더 이상 짙은 욕망을 참지 못하게 되자 억누르고 있던 떨리는 낮은 신음소리가 천천히 흘러나왔다.

 

백기 :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정말 보고 싶었어.

 

허덕이며 그의 숨결과 함께 새어 나온 말은, 다시 내 목구멍 속으로 삼켜졌다.

나는 넋을 잃은 채, 어쩌면 이대로 그가 눈앞에 있는 무너진 벽과 폐허를 모두 잊게 만드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가슴에서부터 저릿한 통증이 밀려왔고, 천천히 고개를 숙이자 내 가슴에서 한 자루의 칼 끝이 솟아나 있는 것을 보았다.

 

심지어 지나치게 떨리고 힘을 주는 바람에, 칼끝은 백기의 가슴을 스쳤고, 핏방울이 그의 피와 함께 녹아내렸다.

 

내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떠졌고, 그제야 그가 나를 껴안은 채 뒤에서 단검으로 찌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엄청난 충격이 밀려왔다.

 

MC : …어째서…

 

백기는 미련이 남은 것 같으면서도, 희미한 자기혐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백기 : 여긴 내가 널 꿈꿔야 할 곳이 아니야.

다음에 내가 널 만나게 된다면, 다시 한번 내 나약함을 용서해줘.

지금… 내겐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이 있어. 팀원들과 너… 모두가 날 기다리고 있어.

 

마치 깊은 바다에 빠진 것처럼 그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백기 : 나는… 네 곁으로 돌아갈 거야.

 

그 흔들림 없는 맹세는, 그를 어둠 속으로 이끌어 그의 모습을 삼켜버렸다.

 

 

 


 

 

 

Chapter 3

나는 저릿한 심장을 부여잡으며 깨어났다. 눈앞에는 창백한 병실이 보였고, 백기는 조용히 누워 또다시 주위의 의사들의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다. 사실 꿈속의 임무는 이미 순조롭게 끝났지만, 그로 인해 그는 중상을 입었고, 나는 가장 위험하지만 유일한 이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날카로운 울림이 내 귀를 파고들었고, 강한 메스꺼움에 나는 몸을 구부리며 거세게 기침을 했다.

 

? ? : MC… 들... 리나?...

 

주위는 하얀 그림자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는 아주 멀리 있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 사이로 힘겹게 고개를 돌리자, 옆 침대에 누워있는 편안한 얼굴을 보았다.

 

세상은 혼란스러운 배경 소음에 둘러싸여 흐릿했지만, 그의 얼굴만은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

심지어 평온하고 부드러운 그의 속눈썹이 눈꺼풀 아래로 작은 그늘을 만드는 것까지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차가운 액체가 내 혈관 속으로 녹아들면서, 초점은 점점 흐릿해졌고, 결국 내게서 멀지 않은 얼굴로 돌아왔다.

 

류 부장 : MC, 내 목소리 들리나?

 

나는 그를 안심시키듯 미소를 지었고, 주변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걸 보았다.

모두의 눈에는 초조함과 죄책감으로 가득했고, 공기 중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늘 웃고 있던 류 부장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소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류 부장 : 자네…

 

MC : … 선배를 만났어요.

 

순간 모든 사람들의 눈에 엄청난 환희가 퍼져 나갔고, 심지어 누군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까지 터트렸다.

 

맹 주임은 내 옆에 서서, 차분하게 내가 본 것을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MC :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을 봤어요…

 

나는 우리만 아는 이야기들은 생략한 채, 더듬더듬 말을 이어 나갔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때때로 세부 사항에 따라 내 이야기를 끊고 자세히 질문하거나 판단하기도 했다.

 

맹 주임 : 그래서 결국 그는 과도한 정신적 긴장으로 인해 환각을 본다고 주장했다는 거군요.

 

MC : 음… 선배는 여전히 자신이 임무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역 분쟁이 끊임없이 고조되는 현 상황에서, 폭력과 대립이 갈수록 흉측한 모습을 드러냈다.

 

새해의 따스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백기는 군으로부터 긴급 소집령을 받았다.

작전은 극비리에 이루어졌으며, 신속한 구출 작전이 필요했다.

 

교전, 폭발, 구출 임무 완료, 응급처치를 위한 백기의 귀국, 혼수상태, 깊은 잠 철수 과정에서 위험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분명히 얼마 전에 일어난 일인데도,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들로 변해버려, 어떻게 해도 도무지 하나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마치 창백한 뉴스 속보처럼 그것은 내 모든 신경을 끌어당기고 거대한 공백만을 남겼다.

 

 

류 부장 : 그를 살리기 위해 많은 약물과 치유 Evol을 최대한 사용했지만, 불가피하게 부작용이 생겼어.

현재로선… 그의 신경 일부가 손상되어, 신체적으로만 살아있는 정도라네.

여러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그를 깨울 수가 없었어… 그가 다른 사람들을 거절하고 있어…

MC, 아마 자네만이 그를 깨울 수 있을 거야.

 

이후에, 맹 주임도 내 앞에 나타났는데, 그녀도 백기의 상황 때문에 급히 소환된 것 같았다.

 

이후, 그들은 나에게 잠입이라던가, 내 뇌에 미치는 부작용 등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그저 멍하니 그들을 바라만 보았다.

 

MC : 선배를 살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할게요.

 

 

MC :  맹 주임님, 저 한 번 더 해볼 수 있을까요?

 

맹 주임 : 그의 정신 방어선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훨씬 강한 편이라, 방금 전의 거부는 당신에게 큰 충격을 줬을 거예요.

이렇게 강도 높은 정신 몰입은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아서, 당신의 뇌와 신경에 어느 정도의 휴식 시간이 필요해요.

 

그녀의 눈빛은 단호했으며, 확고한 신념과 결의를 담고 있었다.

 

맹 주임 : 포기하지 않으려면 인내심을 가져야 해요.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류 부장의 눈짓에 병실에 있던 사람이 모두 나가고, 나는 옆에서 조용히 있는 얼굴을 보며 몸을 일으켜 그의 곁에 앉았다.

 

공기 중에 기계 작동 소리만이 남은 가운데, 나는 그의 손을 들어 올렸다.

 

포개진 손바닥을 따라 익숙한 체온이 흘러들어왔고, 그의 눈앞에 드리운 앞머리가 조금 자라, 그의 긴 속눈썹과 겹쳐졌다.

 

나는 참지 못하고 몸을 숙여 그의 이마에 내 이마를 맞댔다.

 

MC : 제가 선배랑 끝장을 봐야겠어요? 절 그렇게 쫓아내다니…

하지만 괜찮아요. 저는 아주 너그러우니까요. 선배가 빨리 깨어나기만 한다면 전부다 용서해줄 수 있어요.

 

맞아, 선배 좀 전에 잘못 말했어요. 선배가 떠난 후로는 과일화채를 먹은 적도 없고, 예능 프로그램도 보지 않게 됐어요.

선배가 사다 주는 과일화채를 기다렸고, 예능 프로그램들도 선배가 없으면 재미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밖에 있어요. 모두 떠나지 않고 선배를 기다리고 있어요.

 

선배, 포기하지 마요…

 

나는 이를 악물고 많은 말을 했다.

나 자신을 응원하고, 백기를 응원했다.

 

그는 여전히 연기와 총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그 불타는 땅에 남아 있었다.

그는 그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했지만, 자신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어떻게 잊을 수 있지?

 

그 확고한 눈빛과 단호한 말은, 그가 나에게 한 맹세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MC : 전 선배를 믿어요.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요.

 

나는 그에게 반짝이는 바다를 그려내며, 우리가 갔던 눈 덮인 마을과 밀림, 그리고 화려한 불빛이 가득한 고성과 선명하게 빛나는 은행잎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얼굴은 시종일관 고요했다.

 

나는 그의 머릿속에 아름다운 것들이 더 많이 떠오르게 하고 싶었다.

그의 영혼의 잠시라도 편히 쉴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전쟁의 불길이 사라지길 바랐다.

 

 

다섯 시간 후, 나는 장비를 착용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맹 주임 : 그의 뇌 몇몇 영역에서 당신이 준 자극에 뚜렷한 반응을 보인다는 걸 확인했어요. 이건 좋은 변화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번엔 과격한 행동은 하지 마세요. 상황이 아직 구체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선, 돌이킬 수 없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어요.

그리고…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요.

MC씨, 준비되셨나요?

 

MC : 전 준비됐어요.

 

나는 눈을 감고, 느린 호흡 속에서 의식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마음속으로 백기의 이름을 끊임없이 되뇌며, 그의 웃는 얼굴과 찌푸리는 얼굴들을 떠올렸다.

 

온 세상이 숨 막힐 듯 차갑게 느껴졌고, 시야에 점점 커지는 흰 반점이 나타났다.

 

 

눈꺼풀 위로 한 줄기 빛이 스치는 듯 했고, 눈을 떴을 땐 전쟁의 불길과 폐허는 모두 사라져있었다.

 

금빛 찬란한 눈부신 햇살이, 폭포처럼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 내려와, 길을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드럽게 불어왔다.

 

?? : 왜 말이 없어?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백기가 내 옆 잔디밭에 편안히 누워 있었다.

그는 활짝 웃고 있었고,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그의 맑은 두 눈을 드러냈다.

 

백기 : 무슨 생각해?

 

내가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자, 그는 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따뜻한 숨결이 내 얼굴을 스치고, 살금살금 조심스러운 입맞춤이 다가왔다. 이런 미세한 감촉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사람을 더욱 또렷하게 보기 위해 눈을 연신 깜빡였다.

 

MC : 선배, 제 목소리를 들었군요.

 

백기 : 줄곧 듣고 있었어.

 

백기는 마치 그가 줄곧 이렇게 나의 모든 말을 듣고 있었던 것처럼 진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말했다.

잠든 그 장면이야말로 내가 피할 수 없는 악몽인 것 같았다

나는 환각에 빠지지 않으려 눈을 감음과 동시에 나는 또 참을 수 없이 기뻤다. 

모든 것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니까.

 

MC : 제가 잠시 딴 생각을 했어요. 방금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백기 : 우리가 이미 본 부대를 순조롭게 철수시켰다고 말했어.

팡 부대장이 가벼운 부상을 입긴 했지만, 여전히 예전 모습 그대로야. 그냥 조금 더 까매졌을 뿐이야.

넌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의 앞에 나타났을 때, 순간 어안이 벙벙해져서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줄 알았대.

솔직히 나도 그런 기분이 들어. 마치 몇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

샤오시(小奚)가 이어폰으로 부대장에게 인사하며 같이 만두 먹을래요? 하고 묻기도 했어. 여기선 만두를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대장도 너무해. 이번 임무에서 그는 일반 대원으로 합류하는 바람에, 내가 지휘를 맡게 되어서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었어.

 

그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온몸에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비록 그가 말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를 위해 기뻐했다.

 

피와 눈물로 가득 차 황폐해진 땅에서도, 적어도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다.

 

MC : 선배 즐거워 보여요.

 

그는 나를 보며, 손끝으로 다정하고 평온하게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백기 : 즐거워.

재회의 이유가 유쾌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재회할 수밖에 없어.

그래서… 좋아.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나를 좀 더 느긋하게 끌어안았다

 

백기 : 이제 2단계로 넘어갔고,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그러니까 곧 집에 돌아가 널 볼 수 있을 거야.

 

순간 나는 무언가에 찔린 듯한 느낌을 받았고, 침착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MC : 선배 방금 2단계로 넘어갔다고 했는데, 그럼 저랑 선배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예요?

 

백기 : 내 꿈속.

 

시원시원하면서도 명쾌한 그의 대답에, 내 시선은 점점 어두워졌다.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MC : 그럼 빨리 꿈에서 깨어나, 저를 만나러 와줘요.

 

백기 : 걱정하지 마. 난 꿈속에서만 널 생각할 거니까. 남은 시간엔 임무에 전념할 거야.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까, 내가 잠깐 쉰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어.

그러니까 조금만 더 같이 있어 줘.

 

그는 내 머리 뒤로 얹은 손바닥을 그대로 살짝 더 눌러, 나와의 거리를 좀 더 가깝게 만들었다.

 

백기 : 겨우 잠잘 시간이 생겼는데, 마침내 꿈에서 너를 만났어.

 

그의 목소리가 입술 사이에 붙어 있다가, 뜨거운 숨결을 타고 내 심장과 폐 사이로 파고들었다.

 

백기 : 널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아.

그러니까 지금은 서두르지 말고, 좀 더 네게 키스할 수 있게 해줘.

 

얽히고설킨 말소리가 입술과 혀 사이에서 감돌고, 나도 이 순간만큼은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MC : 전 떠나지 않아요. 선배 네 곁에 있을 거예요.

 

나는 몸을 일으켜 그의 이마에 입맞추고, 넘실거리는 그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MC : 하지만 선배는 좀 쉬어야 해요. 지금 선배는 너무 피곤한 상태에요.

 

백기 : 내가 피곤해 보여?

 

MC : 아뇨. 하지만 전 선배를 아주 잘 알고 있어요.

 

그와 함께한 시간을 통해, 나는 그의 침묵과 그가 감추고 있는 모습들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MC : 다른 사람들 앞에선 강한 척 해도 되지만, 제 앞에선 그럴 필요 없어요.

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는 나를 한참 동안 깊이 바라보다가,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백기 : 내가 깨어났을 때도 널 볼 수 있을까?

 

MC : 물론이죠.

 

백기 : 거짓말. 소대에는 네가 없어.

 

MC : 그럼 한번 속는 셈 쳐봐요.

어쩌면 밖에서 일어나는 전쟁도 꿈일지도 모른다고요?

 

백기 : 꿈이었으면 좋겠어.

 

그는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바람이 살랑거리며 불었고, 나는 그를 안고서 그와 함께 이 아름다운 꿈이 주는 편안함을 느꼈다.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지고, 세상은 마치 희망이 없는 어둠으로 변해버렸다.

 

 

 


 

 

 

Chapter 4

의식의 공허함 속, 나는 어둠 속에서 큰소리로 백기를 외치며 찾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내게서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늘 강해 보이던 그가 절규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선명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은 나마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사와는 상관 없이 그가 있는 곳에 머물고 싶게 만들었다...


시간은 마치 이 순간에 멈춰버린 듯, 오직 정적만 남은 체, 끝없는 어둠이 모든 소리와 보이는 것들을 잠식했다.

 

MC : …선배? 백기 선배? 선배!!!

선배 제 목소리 들려요?

 

그의 의식에 또다시 어떤 변화가 생겨 나를 쫓아낼까 두려워, 나는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 …

 

문득, 나는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희미한 심장 박동 소리가, 바닷속 모래알처럼 은은하게 울리고 있었다.

 

MC :선배 제 목소리 들리죠? 어디에 있어요?

… 저 혼자 두고 가지 마요.

 

그의 숨소리와 심장 소리가 내 외침과 함께 점점 더 또렷해졌고— 마침내,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두 팔을 벌려 그 몰아치는 바람을 맞이했다.

 

그것은 마치 나처럼 너무나도 간절하고 절박한 듯, 힘껏 나를 껴안고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듯 날아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철장 안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밖은 끝없는 어둠이었고, 검붉은 액체가 철장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내가 어떻게 철장 안으로 들어왔는지는 몰라, 그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돌아선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숨을 훅 내쉬었다

 

손이 온통 상처투성이인 백기가,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그의 눈은 고요함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마치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은 불안한 기운이 그의 주위를 감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고, 그저 그의 앞으로 달려갔다.

 

MC : 선배, 괜찮아요?

 

백기 : …

 

그는 말이 없었고, 그저 숨을 참았다.

 

그 시선 속에 깃든 짙고 낯선 감정들이 가져온 침묵에 짓눌려, 나조차도 말문이 막혀버릴 것 같았다.

 

순간 당황한 나는, 애써 손바닥을 꽉 쥐고 침착하려 애쓰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MC : 괜찮아요, 제가 출구를 찾아볼게요. 제가 여기서 선배를 나가게 해줄게요.

 

나는 곧장 철창 옆으로 달려가 한 바퀴를 돌았고, 등에선 식은땀이 은은하게 배어 나왔다.

 

이 철창은 출구가 없어.

 

사방의 철창은 차가운 빛을 내뿜으며, 마치 거대한 뼈대처럼 차갑고 단단한 장벽을 이루고 있었다.

 

누구도 들어올 수 없고, 누구도 나갈 수 없었다.

 

중얼거리는 백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기 : 미안해.

…미안해.

 

이 사이로 겨우 짜내듯 힘겹게 나온 그의 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조금씩 무너져내리는 벼랑 끝에 와있는 것 처럼, 공기 중에서는 무언가가 깨지는 듯한 날카롭고 가느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MC : … 저는 선배의 사과를 들으러 여기 온 게 아니에요.

 

백기 : 알아. 하지만…

 

그의 예쁜 눈썹과 눈이 잔뜩 찡그려졌고, 늘 차분하게 방아쇠를 당기던 그의 손가락은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그의 몸은 마치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듯 했고, 침묵 속에서도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울부짖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백기 : 난 못 나가.

나는 이미 죽었어.

 

그의 얼굴은 마치 검게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숨 쉬는 것조차 잊고, 그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MC : …지금 뭐라고 했어요?

 

백기 : MC, 난 죽었어… 죽었다고!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처럼, 그의 입안에서 맴돌던 말들이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절망적으로 꽉 쥐어진 그의 주먹에선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MC : 선배가 이미 죽은 거라면, 그럼 저는… 뭐예요?

 

내게 돌아온 대답은, 나를 휩쓸고 지나간 거칠고 사나운 돌풍이었다.

 

차갑고 끈적한 손끝이 나를 감싸더니, 천천히 내 눈가와 코, 입술을 지나 목덜미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날카로운 그의 눈빛이 협박하듯 내 숨결을 단단히 붙잡았다.

 

백기 : 나는 네가… 진짜이길 원해.

그래야 네가 몰래 우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있으니까.

이러면, 네가 다른 누군가를 만나지 않을 거니까…

 

그리고 다시는 널 잃지 않을 거니까.

 

산산조각나버린 낮은 포효가 그의 목을 짓눌렀고, 죄책감과 사나운 감정들이 그의 눈동자 속에서 격렬하게 커졌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백기를 본 적이 없어, 그저 그가 나를 철창에 밀어붙이고 절망적으로 키스하는 것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끝은 무서울 정도로 차가웠고,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내 손가락 사이사이, 머리카락 사이,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거칠고 지독한 낙담 속에서 나와 그는 한데 뒤엉켰다.

 

때로는 축축하게 핥고, 때로는 사납게 빨아들이며 무서운 공격성을 지닌 채, 곳곳에 짙은 기운을 남겼다.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모두 떨림과 헐떡임으로 산산조각 부서졌다.

 

나는 이미 제대로 설 수조차 없었지만, 그는 조금도 용납하지 않고 허리를 들어 올려 더욱 깊숙이 키스했다.

 

차갑고 끈적이는 철창이 등 뒤에 닿고, 공기는 차가운 기운으로 가득했지만, 오직 그만은 따뜻했다.

심지어 너무 뜨거운 나머지 내 영혼을 태우는 것 같았다.

 

MC : …잠깐만…

 

백기 : 내가 원망스러워?

날 미워해.

 

그는 내 모든 숨결을 삼켜버렸고, 스며 나온 얇은 땀이 맞닿은 피부를 따라 하나가 되었다.

내가 빠져나오려고 할 때마다, 그에게 강하게 끌려 들어가 그의 더욱 직접적인 침범을 허용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부족했다.

항상 몇 걸음의 거리가 남아있었고, 항상 우리의 떼어놓을 수 없는 자세를 막고 있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점점 더 깊어지는 얽힘 속에서, 어떤 통제 불가능한 소유욕이 더욱 더 팽창하고 부풀어 오르며 끊임없이 커져 갔다.

더 이상 저항하거나, 숨길 수 없었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마치 질문하는 듯한 포효를 들은 것 같았다.

 

백기 : 나는 죽었어. 난 할 수 없어. 나는 왜 죽었지. 난 죽을 수 없어. 내가 어떻게 죽을 수 있지. 내가 어떻게 죽을 수가 있겠어.

난 죽을 수 없어! 하지만 난 죽었어! 난 어떡해야 하지. 내겐 더 이상 네가 없어.

 

네가 없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날 거야?

 

…울 거야?

 

그 떠다니는 소리들은 마치 메아리처럼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들려왔다.

 

나는 그가 이 철창 안에 갇혀서, 철창을 몇 번이고 치는 것을 본 것 같았다. 그 불안하고 분노로 가득 찬 눈은 먼지로 덮였지만, 결코 움직임을 멈추진 않았다.

짙고 어두운 감정들이 난폭하게 휘둘리고 궁지에 몰리기 시작하자, 그 역시 흔들리기 시작하고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MC : …제가 선배를 왜 미워해요?

 

백기 : 약속을 어겼으니까.

 

언제부턴가 나는 정신없이 바닥에 누워 있었고, 백기가 내 위에서 지탱하고 있었다.

땀이 맺힌 핏방울과 함께 그의 턱을 타고 흘러내려, 마치 소리 없는 피눈물처럼 뚝뚝 떨어졌다.

 

MC : 그렇다고 해도 선배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진 않아요.

 

백기 : 그럼 날 잊을 거야?

 

MC : 잊었으면 좋겠어요?

 

백기 : 아니.

 

그의 눈가가 약간 붉어졌고, 나와 맞잡은 손끝엔 힘이 잔뜩 들어갔다.

 

MC : 어째서요?

 

백기 : 난 비열하니까.

내가 죽더라도, 네가 항상 날 기억하고 나를 사랑해주길 바라니까…

내가 네 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더라도, 매 순간마다 내 그림자가 되어 네가 평생 날 기억해 줬으면 해.

 

그 솔직한 시선에는 더 이상 숨길 것이 없었다. 은밀하고 삐뚤어진 욕망과 갈망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의 마음속은 모순과 갈등으로 가득 차 있었고, 모든 미안함과 두려움을 가득 품고 있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수가 있었다.

불확실한 어둠이 늘 그를 감싸고, 시종일관 긴장된 신경이 그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사람들의 버팀목이었기에, 두려워할 수도, 절망할 수도 없었다.

 

백기 역시 보통 사람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흐르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MC : 그거 말고는요?

만약 진짜 제가 선배 앞에 있다면, 제게 마지막으로 키스를 해주고 절 떠나보낼 거예요?

 

핏방울이 계속 떨어졌다.

그의 손바닥에 점점 더 세게 조여오는 것이 느껴지자 심장까지 아픈 것 같았다.

 

백기 : 아니.

 

그는 온 힘을 다해 겨우 대답을 뱉어낸 듯,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MC : 거짓말.

선배, 선배는 거짓말을 전혀 할 줄 몰라요.

 

백기 : 내가 무슨 말을 하길 원해?

 

MC : 그건 선배가 직접 알려줘야 해요.

 

나 역시 그를 돌아보며, 도망치지 않고 피하지도 않고, 오직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의 모든 갈망을 말해주기를 바랐다.

 

백기 : … 곁에 있어 줘.

아무데도 가지 말고, 바로 여기! 내 곁에 있어 줘!

영원히 내 곁에 있어 줘!

 

이렇게 말하면, 네가 들어줄까?

 

MC : 좋아요.

 

백기는 멍해졌다.

 

그의 호박색 눈동자가 격렬하게 수축하며, 나의 그림자를 온전히 비췄다.

 

그가 너무 세게 누르는 바람에 두 팔로 그를 껴안을 수 없어, 있는 힘껏 그의 손을 맞잡았다.

 

MC : 저는 항상 선배가, 매번 무사히 제 곁으로 돌아오길 바랐어요.

선배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만약에, 제 말은 그러니까 만약에 선배…

선배가 정말로 지쳐서, 더 이상 일어설 수 없고, 아무리 해도 더는 버틸 수 없게 된다고 해도… 무서워하지 마요.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MC : 선배가 살고 싶다면 선배와 함께 살 거예요. 선배가 계속 나아가고 싶다면,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전 마지막 순간까지 선배와 함께할 거예요.

하지만 만약 선배가 이 어둠 속에 있겠다면, 저도 선배와 함께 계속 어둠 속에 있을게요.

 

그러니까… 선배, 무서워하지 마요.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는 생각하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사람이고, 많은 말을 할 필요 없이 모든 말을 다 전하는 사람이다.

 

그는 나의 밝은 달, 나의 소매 사이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 내가 닿을 수 있는 모든 순간이자 닿을 수 없는 모든 순간들이다.

 

그는 이미 내 핏속에 스며들어, 내게 가장 소중한 영혼이자, 나의 아름다운 폭풍이 되었다.

 

그리하여 바람은 나의 숨결이 되었고, 우리는 이미 하나가 되어 서로의 몸 속에 살며, 희미한 운명으로 변하여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MC : 선배를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정말 선배를 사랑해요.

 

백기 : 다시 한번 말해줘.

 

그의 눈동자는 깊고 어두웠으며, 목소리는 낮고 쉰 듯했다.

 

MC : 선배가 절 사랑하듯, 저도 선배를 사랑해요.

선배와 함께 있고 싶어요,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는 몸을 숙여 내 입술에 키스하며, 모든 말들을 막았다.

 

말로는 다 표현 할 수 없는 너무나도 많은 말들이, 그 부드러운 키스에 담겨 있었고, 그는 마치 그의 몸에 날 녹여 버릴 듯이 꽉 끌어안았다.

 

백기 : 넌 왜 내 앞에 나타났을까.

 

MC : 그럼 선배는 왜 제 앞에 나타났어요?

 

백기 : 넌 내 운명이니까..

널… 사랑하니까. 더 이상 못 놔줘.

 

MC : 그럼 더 세게 안아줘요.

여기에 있다고 말해줘요, 제 곁에 있다고… 저도 선배와 마찬가지로 선배가 필요해요.

 

이쯤되니 이미 그의 욕망인지 내 욕망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어쩌면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격양된 분노, 무력한 절망, 불안한 떨림…… 이 모든 것이 사라진 것 같았다.

 

나와 백기만이 남았다.

 

그가 나를 더 세게 껴안으며 또다시 입을 맞추는 것만이 느껴졌다.

 

거센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와, 뜨겁고도 열정적인 시선과 입맞춤이 되어 내 입술 사이로 떨어졌다.

 

백기 : MC

 

어둠 속에서, 나는 그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백기 :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나는 너와 함께 살고 싶어.

 

 

 


 

 

 

Chapter 5

그의 단호한 결심과 함께, 어떤 거대한 욕망이 그의 세계에 천천히 솟아올랐고, 그와 더불어 그의 기억 속에서 그가 상처 입었던 순간을 보게 되었다. 그가 어떻게 그런 의지력으로 버텨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다행히도 그는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다시 그 불타고 황폐해진 땅 위에 서 있었다.

 

폭발과 굉음이 터져 나왔고, 연이은 군용기들이 하늘을 뒤덮으며 피비린내를 일으켰다.

 

폐허 곳곳에 무너진 건물에서 삐져나온 뒤틀린 철근들이 겹겹이 쌓여있었고, 짙고 검은 연기가 그 광경들을 좀 더 현실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슬프면서도 무감각한, 그리고 새빨갛게 충혈된 눈 두 쌍을 지나쳤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백기를 만났다.

 

 

핏빛으로 물든 세상 속에서, 그는 흰 재킷을 입고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앉아 있었다.

그의 호박색 눈동자는 자욱한 연기 속에서 어두운 색을 띠고 있었지만, 그 깊은 곳에서는 마치 맹렬한 불꽃처럼 마음속에서 꺼리는 모든 것들을 태워 버릴 것만 같았다.

 

그에게 점점 가까이 달려갈수록, 흰색이 하늘보다도 더 깨끗하다는 걸 깨달았다…

 

가짜다.

 

그의 드러난 목덜미와 가슴에는 눈에 띄는 상처들로 가득했고, 찢어진 검은 옷은 고요하게 스며드는 피로 인해 점점 더 검게 변해, 결코 아물지 않는 피딱지처럼 보였다.

 

그는 온몸이 마치 무언가에 굳어버린 듯, 가슴만이 크게 오르내리며 숨을 내쉬고 있었고, 더러운 먼지 알갱이들이 섞인 공기일지라도 필사적으로 마시려 하고 있었다.

 

문득, 백기는 마치 무언가 발견한 듯, 눈을 들어 짙은 연기 속을 지나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크게 오르내리던 가슴이 멈췄다. 

마침내 그는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살짝 늘어트린 채,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백기 :MC, 나랑 애기 좀 해.

뭐든 좋아.

 

순간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본능적으로 입을 열수밖에 없었다.

 

MC : …선배 왜 여기 이렇게 앉아 있어요.

 

백기 : 움직일 수가 없어.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다리를 가리켰고, 머리를 받치고 있던 팔을 다시 세우곤,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백기 : 이런 곳은 아무런 감흥도 없는데, 지금은 누우면 바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아직은 잘 수 없어.

그들이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MC : 그들이 곧 올 거예요, 반드시 올 거니까… 그러니까 잠들면 안 돼요!

 

백기 : 알고 있어.

 

그의 단호한 목소리에,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울고 싶어졌다.

나는 그에게 손끝을 뻗었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움츠러들었다.

 

백기 : 만지지 마, 더러워져.

 

나는 뜨거운 열기가 가슴속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눈가엔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불만스러운 듯 그에게 입술을 쭉 내밀었다.

 

MC : 선배는 제가 좋지 않나 봐요. 방금 막 달려와서 온통 먼지 투성이라 그런가.

더 이상 제가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는 잠시 망설였다가, 한참 뒤에서야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손과 몸에 묻은 피가 그의 포옹과 함께 내 얼굴과 몸에 묻었다.

 

나는 그 순간 그의 등 전체가 이미 새까맣게 타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각난 살갗은 불에 타버린 천처럼 뒤틀려 있었고, 소리 없는 불길은 드러난 신경의 모든 부분을 끊임없이 핥고 있다.

 

나는 내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내가 병원에서 백기를 만났을 때, 그의 상처는 깨끗하고 하얀 붕대로 감겨 모두 꼼꼼하게 처리되어 있었고, 오후의 한가로운 낮잠을 자는 것처럼 평온해 보였다.

 

나는 그제야 그 순간 그가 얼마나 심한 상처를 입었는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더 이상 억제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내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고, 나는 그저 무너지듯 그의 목을 힘껏 끌어안았다.

 

백기 : 어쩌지, 내년 여름에 맹 주임님한테 또 잔소리 듣겠어.

 

MC : 아녜요. 그녀도 분명히 헤어지기 아쉬워 할 거예요. 상냥하게 대해주실 거예요.

 

백기 : 그건 좀 무서운데, 그냥 잔소리 듣는 게 나아.

그땐 너도 같이 있어 줘야 해. 도망치면 안돼.

 

낮은 웃음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총알도 차츰 멈추는 것 같았고, 폭발음도 사라졌다.

매우 느리고 희망에 찬 노랫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바람결에 전해져 왔다.

 

MC : 선배, 여기도 꽃이 피었으면 좋겠어요.

 

백기 : 필 거야.

 

갑자기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나를 감싸 안는 것 같았다.

 

시야가 멀어지고, 몇 가닥의 다급한 그림자가 겹겹이 쌓인 연기를 뚫고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점점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내가 가장 잘 아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 것을 보았다.

 

백기 : 날 집에 데려다줘.

 

 

나는 또다시 내가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산산이 부서진 무수한 장면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고, 수 많은 그와 내가 서로 겹치고 덮이면서, 마지막엔 거대한 흰빛으로 합쳐졌다.

 

 

철길은 여러 방향으로 뻗어, 고요하게 먼 곳으로 흘러 들어갔다.

 

백기는 선로의 갈림길 위에 조용히 서 있었다.

 

햇살은 맑고 평화로웠으며,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와, 다음 순간 그를 날려 버릴 것만 같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여기가 모든 것의 종착점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MC : 선배!

 

그는 무슨 소리를 들은 듯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의 시선은 도무지 나에게 닿질 않았다.

힘을 잃은 초조함과 두려움이 나를 가득 채웠고,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손에서 빠져나가는 바람 뿐이었다.

나는 그의 발걸음을 더 이상 따라잡지 못할까 봐 두려웠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MC : …선배, 어디 가는 거예요…!

 

백기 : 나는… 네 곁으로 돌아갈 거야.

 

그의 담담한 눈빛은 순간 초점을 잃은 것 같았다. 그는 나를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나로 가득했다.

 

백기 : 어떻게 걸어도 이상한 것 같아.

아무리 걸어봐도 네 곁으로 갈 수가 없어.

 

…어떻게 가야 해?

 

그는 중얼중얼 묻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신앙에 대한 맹세를 완수하고, 모든 고통과 외로움 그리고 투쟁을 극복하여 마지막 선택만을 남겨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바람의 궤적을 보았다.

 

MC : ...그럼 가지 마요.

우리 날아가요!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눈을 깜빡였다.

 

백기 : 나는 날 수 없어.

누군가가… 나를 날게 해줬어, 바로 너야…

 

MC : 아니에요!!

 

나는 온 힘을 다해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MC : 모든 신념과 자유의 시작점은… 언제나 선배 자신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건 모두 선배만의 바람이에요.

 

거세고 자유로운 바람이 이 세상 구석구석 모든 곳을 지나 그의 앞에 모일 수 있도록, 나는 그를 꽉 붙잡으려고 노력했다.

 

광야 위로 부는 거친 바람이 부드러운 속삭임을 실어 나르며, 마치 굳건하고 오랜만에 만난 벗을 부르는 듯 그의 눈을 천천히 밝혔다.

 

백기는 마치 나와 바람 그리고 자신을 잡고 싶은 듯, 손바닥을 위로 힘껏 내밀었다.

 

보이지 않는 궤적을 따라 생명이 바람 속에 펼쳐지고, 하늘 사이를 맴돈다 그는 날아올랐다.

 

그 순간, 그는 죽음과 삶, 무겁고 긴 밤을 넘고 무수한 악몽과 끊임없이 솟구치는 불길을 넘어갔다.

 

그는 마침내 내 손을 잡았고, 나는 그의 눈 속에 비치는 나를 보았다.

 

 

멀리서 들리는 기계의 낮은 소리가 내 신경을 곤두세웠고, 나는 어렴풋이 끊이질 않는 눈물과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반쯤 멍하게 뜬 그의 시선과 마주쳤다.

 

마치 꿈속과 꿈 밖을 수없이 헤맨 것처럼

 

그가 천천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커튼 사이로 겨울의 아침햇살이 병실에 들어와, 나란히 붙어 있는 두 개의 침대를 따뜻한 색으로 감싸고 있었다.

 

백기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채, 옆 침대에 누워있는 소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고른 숨결과 내려온 속눈썹, 그녀의 눈가와 머리카락 끝에 비치는 햇살을 보았다.

그녀는 마침내 편히 잠들 수 있었던 것처럼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아득히 멀고도 또렷한 장면들을 다시 떠올라, 모든 것이 꿈이 아니었음을 상기시는 것 같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려 했다— 그리곤 갑자기 떠진 눈과 마주쳤다.

 

백기는 엉겁결에 눈을 감았다.

 

MC : 깨어있는 거 다 알아요. 자는 척 하지 말아요.

 

갑자기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는 나른하게 한쪽 눈을 가늘게 떴다.

 

백기 : 왜 갑자기 일어났어?

 

MC : 누가 계속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어서요.

 

백기 : 정말? 나는 한마디도 안 했는데.

 

MC : 마음속 목소리도 포함이에요.

 

그녀는 마치 백기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 아니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아예 손을 뻗어 그녀를 자기 침대 위로 확 끌어당겼다.

 

백기 : 그럼 좀 더 자세히 들어봐.

 

품에 안긴 온기는 익숙하고 따뜻했다.

그는 그녀의 머리 위에 턱을 괴며,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

 

잠시 후, 품에 안고 있던 사람이 고개를 내밀며 자신을 향해 눈을 깜빡였다.

 

MC : 선배, 머리카락이 많이 자란 거 같아요. 제가 좀 잘라줄까요?

 

백기 : 지금?

 

MC : 전부터 길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다시 잘 생각도 없으니까, 깬 김에 운동 좀 해야겠어요~

 

그는 소녀의 행동력을 과소평가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목에 예비 베개 커버를 두르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아무렇게나 높게 묶고, 몸을 살짝 숙여 그의 이마 앞 잔머리들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어, 빌려 온 가위로 대충 몇 번 재어본 후 잘라냈다.

 

샤락 거리는 소리가 바람에 섞이고, 갈색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다리 사이 수건 위로 떨어졌다.

그녀의 손길은 부드럽고도 단호했는데, 백기는 문득 그녀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MC : 눈감아요. 그렇지 않으면 눈에 잔머리가 들어갈지도 몰라요.

 

백기 : 난 그냥 널 보고 싶어.

 

MC : 선배도 참… 나중에 눈 찔려도 전 몰라요.

 

백기 : 그럼 네가 평생 날 책임져줘.

 

어느 샌가,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떼를 쓰고, 당당하게 장난치는 것이 하나의 특권 처럼 되어버렸다.

 

웃고 떠드는 사이 머리카락을 다 자르고 간단히 청소를 하는 동안, 백기는 침대 협탁 위에서 소박하게 제본된 갈색 책자를 보았다.

 

MC : 그거 시 선생님이 두고 가셨어요.

 

마치 자신의 멈춤을 눈치챘다는 듯, 그녀가 고개를 내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MC : 그날 그 분이 선배를 만나러 왔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선배가 깨어나질 않았어요. 굳이 선배를 깨우진 말라 하고, 이걸 두고 갔어요.

그리고 선배가 차 안에서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은, 이걸 보면 알 거야... 라고도 했고요.

 

백기는 잠시 생각하더니, 곧 그날 구출 작전 중 그들이 차 안에서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우리는 그 습한 여름, 초기 점검에 대해 이야기했고, 시인이 지금도 여전히 시를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공적으로 철수한 후에는 모두를 위해 시를 한번 써주기로 했다.

 

백기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듯했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겼다.

 

10년 여름의 끝 무렵, 장갑차에서.

15년 늦봄, 작은 방에서.

17년 7월, 비탈 길에서

20년 가을, S시에서.

24년 동지, 연구 기지에서.

 

그는 마지막까지 빠르게 넘겼고, 아무렇게나 쑤셔 넣은 듯한 종이 한 장이 그대로 드러났다.

 

25년 겨울, 병동 복도에서.

 

백기는 멍해졌다. 

 

서로 다른 깊이의 글씨체는, 서로 다른 시기에 간간이 쓰인 듯 다소 지저분하게 적혀있었다.

어떤 글자는 번진 흔적이 있고, 수정된 부분도 제법 많았다.

 

그것은 보기에 썩 좋진 않았고, 다소 엉성하기도 했지만, 각 글자들은 그 얇은 종이를 무겁게 만들었다.

 

백기가 웃었고, 평화롭고 고요한 바람이 창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마음이 시큰거리면서도 유난히 고요했다.

 

세상에 다시 꽃이 활짝 피기를.

 

 

오늘 밤 별들은 찬란하게 빛나, 

당신에게 이 풍경을 전하고 싶어요.

하지만 사랑하는 당신, 당신은 여전히 당신의 행방을 나에게 알려주려 하지 않죠.

 

나는 빛을 볼 수 없어, 

그저 고개 들어 별들을 바라봐요.

고향으로 가는 기차는 오고 가지만,

당신이 없으니, 나는 혼자 가고 싶지 않아요.

 

오늘밤은 불꽃놀이가 화려할 거예요.

하지만 나는 그 풍경을 당신에게 전할 수 없어요.

하지만 사랑하는 당신, 나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내 꿈속에 찾아와줘요.

그곳에는 들판 가득한 꽃들과 돌아온 비둘기들이 있어요.

만약 당신이 내가 당신을 위해 만든 꽃바다를 본다면,

발걸음을 멈추고, 마음에 드는 꽃을 한 송이 따세요.

새벽 햇살을 받으며 나와 함께 깨어나 주세요.

 

더 좋을 수 있다면,

그 꽃씨도 함께 가져오고 싶어요.

이곳에도 꽃이 가득 피면,

당신을 데리고 함께 기차에 올라,

하룻밤을 세워, 쌓아뒀던 마음을 전할게요.

 

귀여운 당신, 붉은색은 너무 강하고, 밤하늘은 너무 멀어요. 

나는 아직 당신의 모습과 목소리를 찾지 못했고,

아직 불꽃을 잡지 못했으며,

아직 새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아직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하지만 사랑하는 당신,

나는 이곳에 꽃을 가득 피울 거예요.

언젠가는,

이곳도 다시 꽃으로 가득 찰 거예요.

 

 

 


 

 

 

Chapter 6

깨어난 백기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 던 것처럼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사소하고 평범한 아름다움들이 약속처럼 우리의 일상을 가득 채웠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일들이 많았다...


백기가 깨어난 후, 그의 몸은 놀라운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정신적인 소모로 인해, 긴장하고 있던 신경이 풀려서인지, 며칠 동안 깊이 잠들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항상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 누군가의 손이 있음을 느꼈다.

내가 서서히 의식을 회복할 때까지도, 그는 여전히 불안한 마음으로 계속 나를 누르며 반복해서 검사했다.

 

병원 입구에 새로 붙인 복(福)자와 휘장을, 휴대폰에 쏟아지는 온갖 축하 문자들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설날이 다가오는구나.

 

하지만 우리는 류 부장의 명령으로 병원을 나갈 수 없었다.

백기는 여전히 관찰과 안정이 필요하고, 음식도 조심해야 했다.

고진이 매운 소고기볶음 먹방으로 그의 입맛을 달래주려 했지만, 결국 병실에서 싸늘하게 쫓겨났다.

 

입원해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러 왔고, 수많은 익숙하고 또 낯선 얼굴들이, 눈물을 머금고 그의 손을 잡으며 꽃을 전했다.

 

한번은 그를 만나서, 그가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소란을 피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MC : 선배, 이거 봐봐요 제가 뭘 사 왔게요~

 

백기 : 왜 나보고 사 오라고 하지 않고.

 

MC : 방금 누가 선배를 찾아온 것 같길래요. 어차피 그리 멀지도 않았어요.

 

나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도시락을 열었고, 코를 찌르는 향긋한 냄새가 퍼져 나왔다.

 

MC : 오늘은 설 전날이니까 만두(*교자)를 먹어야겠어요.

 

백기 : 나도 먹어도 돼?

 

MC : 당연히 안되죠, 선배건 제가 이미 준비 다 해놨어요~

 

나는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 하며 수프 상자 두 개를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MC : 제가 특별히 사장님께 부탁해서 만든 만둣국에, 선배를 위해 야채랑 살코기를 가득 넣은 죽도 준비했어요!

 

백기 : 그러니까…

 

그는 눈썹을 치켜뜨고, 수프 상자에서 내 얼굴로 시선을 천천히 옮겼다.

 

백기 : 지금 나보곤 만둣국만 먹고, 네가 먹는 걸 지켜만 보라는 거야?

 

MC : 네, 조금만 더 참아요. 맹 주임님이 열흘만 더 참으면 된다고 하셨어요.

 

백기 : 안 먹을래.

 

MC : 어제도 주임님이 선배보고 착하다고 칭찬하셨잖아요. 몰래 먹으면 혼나요!

 

백기 : 상관없어.

 

MC : ...이 사람이 정말. 그럼 저도 안 먹을래요. 선배랑 같이 국이랑 죽 먹죠 뭐.

 

백기 : 그것도 안 돼. 오늘은 설 전날이니까, 먹어야지.

방법을 생각해 보자.

 

MC : 선배 억지 부리지 마요…!

 

백기 :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그는 입꼬리를 장난스럽게 끌어올리며, 나를 다정하게 품에 안고는 횡포한 자세를 취하며 앉았다.

 

그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보며, 머릿속에 어딘가 좀 부끄러운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를 쳐다보고는, 항복하듯 그의 볼을 꼬집었다.

 

MC : 그럼 일어나요. 이런 자세론 못 먹어요.

 

그가 손을 놓은 후, 나는 도시락을 들고 만두 반 개를 집어 먹었다.

빤히 쳐다보는 그의 시선에, 나는 만두 맛을 느낄 여유도 없이, 그저 통째로 꿀꺽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다 마침내 수줍음을 참고, 그에게 몸을 기울여 입술에 살짝 키스했다.

 

백기 : 맛있네.

좀 더 먹고 싶은데, 아직 만두도 많이 남았잖아.

 

MC : …

 

 

나는 그 만두를 어떻게 다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았고, 시간은 흘러 저녁 무렵이 되었다.

 

심지어 그는 아주 "아낌없이" 자신의 만둣국까지 내게 나눠주었고, 결국 그가 만든 맛 이외에는 다른 어떤 맛도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가 나와 식후 운동을 하려고 할 때, 병실 문이 두드려졌다.

 

문을 열어 보니, 평화유지군 대대장과 해 주임인 것 같았고, 그 뒤에는 몇 년 전 케이블카에서 본 남자가 서 있었다.

 

그 순간, 백기도 진중하게 걸어 나왔다.

 

대대장 : 꼬맹이, 그냥 침대에 얌전히 누워 있어.

 

해공 : 백기형… 그냥 누워 계세요…...!!

 

백기 : 전 그렇게 연약하지 않습니다.

 

남자 : 9일 동안 잠만 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남자의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힘이 넘쳤고, 평소 반항적이던 백기의 얼굴에도 약간의 긴장한 기색이 보였다.

 

낮은 두 웃음소리가 방 안에서 울려 퍼졌다. 마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제의 일 처럼.

 

백기가 진지하고도 정중하게 나를 그들에게 소개한 뒤, 시간이라는 넉넉한 선물을 보는 것처럼 유난히 따뜻한 시선들이 나에게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인사를 나눈 후, 나는 검사를 핑계로 그들의 짧은 재회를 더 이상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그들의 모습을 방문 안에 남겨두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던 참에,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류 부장과 마주쳤다.

 

류 부장 : MC, 여기서 뭐 하나? 백기 녀석은 어디 가고?

 

MC : 선배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어서, 자리도 피해줄 겸 잠깐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나는 무심코 백기의 손님들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가 눈을 굴리더니 가방 하나를 내게 건넸다.

 

류 부장 : 몇 명이라, 그럼 나도 여기 었어야 겠구만. 이건 그 녀석 물건인데 수고스럽겠지만 대신 좀 전해주게.

 

가방이 제법 무겁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그것을 만졌는데, 유선형의 차갑고 단단한 윤곽이 느껴졌다.

나는 그 물건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닫고 류 부장의 암묵적인 미소에 고개를 끄덕였다.

 

류 부장을 배웅하고 난 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전화벨이 급하게 울렸다.

 

유영 : 대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MC : 유영씨도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무슨 일 있어요?

 

유영 : 흑흑, 설 전날 폐를 끼치고 싶진 않지만, 혹시 잊으셨을까 해서요......

연휴 둘째 날 방송되는 시상식에 대표님 부재를 대신할 영상이 꼭 필요하거든요

 

 

나는 병원을 함부로 나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당조를 통해 대월에게 집에 가서 내 드레스를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아마도 백기가 아직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간호사에게 보고 한 뒤 옥상의 온실 쪽으로 걸어갔다.

 

산들바람이 불어오자, 나뭇잎이 살랑거리며 사각거리는 속삭임을 냈다.

 

구슬처럼 흰 빛이 비단처럼 내려앉아, 푸른 잎으로 가득한 유리 온실을 몽롱하고 은밀한 색으로 물들였다.

 

맹 주임이 이곳 환경이 백기의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해서, 그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공간이었다.

 

나는 간단히 정리를 한 후, 드레스와 코트를 반쯤 걸쳤다.

 

빛과 그림자가 딱 맞게 비쳤고, 멀리서 보이는 불꽃놀이가 화려하고 눈부셨다.

꽤 멋진 배경 앞에서, 나는 휴대폰을 설치하고 녹화를 시작했다.

 

MC :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MC입니다…

 

원고는 내가 현장에서 말하려고 미리 준비해뒀던 것이었다.

 

그 후 나는 서둘러 병원으로 돌아갔고, 남은 일들은 뒤로 한 채 모두 잊어버렸다.

 

지금은 그 어떤 스포트라이트도 없고, 주목도 받지 않았지만, 나는 오히려 매우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꼈다.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지만, 만약 지금과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 지금보다 천 배 만 배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녹화 정지 버튼을 누른 후,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류 확인을 마치고 영상을 유영에게 보낸 후 고개를 든 나는, 순간 멍해졌다.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추운 밤, 백기는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는 겉옷을 대충 걸치기만 했을 뿐, 대부분의 피부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그곳에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눈살이 찌푸려질 뿐이었다.

 

MC : 얘기 다 나눴어요? 왜 이렇게 나왔어요?

 

그의 발걸음을 따라 넓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나는 약간의 위험과 압박감을 느꼈다.

 

어떤 절박한 감정이 이 순간의 침묵을 가득 채우고, 그 모호한 시선에 소리 없이 집중 됐다.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니, 내가 입고 있는  환자복 바지가 보였고, 문득 어색한 생각이 들었다.

 

MC : 영상은 상반신만 나오니까 아래는 괜찮… 서 선배,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내 앞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내 바지를 잡아 아래로 끌어당겼고, 순간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 그의 거친 손끝이 더욱 뜨겁게 느껴졌다.

 

백기 : 가만히 있어.

 

그는 목소리를 내리깔고 옆에 놓여있던 스타킹을 집어 들더니, 내 앞에 반쯤 쭈그려 앉아 내 발바닥을 들어 올렸다.

 

분명 익숙한 온도인데도, 지금 이 순간 그의 손은 엄청 뜨거웠고, 그의 손끝이 스친 곳은 간질거리고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발을 빼려 했지만, 강력한 힘에 의해 제자리에 갇혔다.

 

나는 그가 천천히 스타킹을 올려주는 것을 허락 할 수밖에 없었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짜릿한 감각이 밀려왔다.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뜨거운 감촉이 마치 한기를 서서히 데우는 것 같았다.

그의 움직임은 유난히 진지했고, 마지막까지 다 신겨준 후에 내 허벅지 위쪽에 장식 벨트를 묶었다.

 

백기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호박색 눈동자는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고, 마치 짐승이 우리에서 벗어나 모든 복종을 바치면서도, 여전히 사냥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백기 : 잘 어울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나는 다시 한번 치장된 내 몸을 살펴보았다.

그는 진즉 구석에 숨어 다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며칠 동안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던 감정들을 전부 털어놓았다.

 

MC : 아직도 죄책감 같은 걸 느끼고 있어요?

 

백기 : 응,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나의 가벼운 질문에, 그는 솔직한 표정을 지었다.

 

백기 : 나는 네가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도록,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널 지킬 거야…

어쨌든, 난 네게 돌아갈 거야.

나는 내가 했던 그 맹세들을 결코 잊은 적이 없어.

하지만 내 인생은… 많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

 

그는 충성스럽고 간절하게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마음속 깊이 감춰왔던 의심과 방황이, 마치 이 순간 불꽃놀이에 비춰진 것처럼— 그만의 맑고 투명한 마음이 내게 보이는 것 같았다.

 

MC : 응,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

 

약간 울먹이는 내 목소리에, 그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백기 : 미래에 내가 어디로 가든, 항상 너와 함께할게.

 

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그가 임무를 수행 하러 갈 때마다 나와 함께 가자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MC : …그래서 이제 다시는 날 내쫓지 않을 거예요? 날 떠나게 하지도 않을 거구요?

저를 혼자 남겨두지도 않을 거예요?

 

백기 : 낮이든 밤이든, 절대로 널 내버려두지 않을게.

 

그는 항상 굳게 다짐하며, 언제나 확고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늘 예상치 못한 일이 찾아왔다.

 

그리고 이제 그 사고도 그가 받아들였다.

설령 생명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도, 운명이 그에게 항복을 강요하더라도, 그는 결코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내가 옆에 놓아둔 서류 가방을 집어 들었다. 가죽 총집이 달빛 아래서 부드러운 빛을 띠었다. 백기는 그것을 내 등 뒤에 묶었다.

 

백기 : 이제 완벽해.

 

MC : 사실 제가 이렇게 하는 게 더 예쁘지 않아요? 어쨌든 저도 선배랑 같이 지옥 불과 총알을 뚫고 나온 슈퍼 프로듀서잖아요.

 

백기 : 정말 예뻐.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는 큰 손으로 나를 받쳐 안아 들곤 곧바로 일어났다.

 

갑자기 몸이 뒤로 젖혀지자, 나는 본능적으로 다리를 들어 그의 허리를 감았고, 그의 힘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안겼다.

 

일어서면서 코트가 바닥에 떨어졌고, 차가움과 뜨거운 열기가 동시에 몰려왔다. 붕대의 거친 감촉이 손바닥을 스치자, 나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MC : 선배… 아직 다 낫지도 않았잖아요!

 

백기 : 그럼 움직이지 마.

 

그는 한 손으로는 옆에 있는 선반을 가볍게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나를 살짝 건드렸다.

 

지점이 너무 작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몸은 온통 상처투성이라 함부로 움직일 수 없어, 나는 굳은 몸으로 그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제멋대로인 행동 때문인지, 몇몇 상처에서 피가 다시 조금씩 스며 나왔다.

나는 상처들을 힐끗 바라보았고, 불안한 마음에 막 입을 열려던 찰나, 나를 지탱해주던 손이 살짝 움직였다.

 

백기 : MC, 내가 정말 깨어난 걸까?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고,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봤어…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아름다워.

마치 내 의식 속 환상처럼 아름다워.

 

황금빛을 띠는 호박색을 바라보며, 나는 그 안에 담긴 그의 마지막 두려움을 보는 것 같았다.

 

남들은 모르는 셀 수 없이 많은 침묵과 순간들 속에서, 그도 죽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두려움에 떨며 손바닥을 움켜쥐기도 했을까.

 

나는 그의 뺨을 살며시 어루만지며. 그의 눈에 애정 어린 입맞춤을 했다.

 

MC : 깨어났어요. 선배.

선배는 살아있어요, 저와 함께 살아있어요.

 

백기 : 증명해 줄 수 있어?

 

MC : 어떻게 증명하면 될까요?

 

백기 : 아주 많이, 아주 많은 증명이 필요해.

 

얇은 드레스 천으로는 미묘한 간지러움 막을 수 없었고, 나는 급히 입술을 깨물며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참았다.

 

하지만 그는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내게 더욱 가까이 다가와 뜨거운 숨결을 스치며 내 심장 박동의 리듬을 흐트러뜨렸다.

 

백기 : 네가 날 사랑한다는 걸 증명해줘, 증명해... 네가 정말 내 곁에 있다는 걸.

 

 

주변의 온도가 함께 오르는 것 같았다.

 

무심코 무릎으로 그의 옆구리를 비비자, 그의 허리 근육이 움찔하며 내게로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턱을 살짝 들어 올렸고, 이 순간 그의 차갑고 날카로운 윤곽은 매혹적이면서도 모호해서, 그의 눈 속에 가득 담긴 숨김없는 욕망을 더욱 적나라하게 만들었다.

 

백기 : 키스해줘, MC.

 

나는 그의 시선에 단단히 사로잡혀, 도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오직 그의 명령만을 받아들이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그에게 주길 원했다.

 

나는 그의 뒷머리를 어루만지며, 조금은 건조한 듯한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도 이 키스를 더 깊게 느끼고 싶은 듯, 혀끝을 서로 얽히고 천천히 부드럽게 쓸어댔다.

 

진득한 물소리가 가늘게 길어지며, 마치 밀려왔다 잦아드는 파도처럼 본능적으로 나를 떨리게 했다.

온몸을 그의 몸에 기댄 채, 힘없이 가라앉을 때마다 마치 그가 더 깊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

 

열기 가득한 세상 속에서, 나는 그만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순간, 갑자기 울린 벨 소리가 정신을 번쩍 들게 했고, 나는 몸이 굳어지면서 무의식적으로 품에 안은 사람을 더욱 꽉 껴안았다.

 

귓가에 그의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복수라도 하듯 내 목덜미를 살짝 물었다.

 

MC : 잠깐만요... 전화가 온 것 같은데.

 

백기 : 그냥 무시해.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감정적인 중얼거림이 남아 있었고,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내 귓가에 비비며 내 오른쪽 귓볼을 입술로 머금었다.

 

눈길 한 켠, 휴대폰 화면의 "류 부장"이라는 세 글자가 유난히 또렷하게 보였다.

 

MC : 하, 하지만 류 부장님 연락인 거 같은데…!

 

백기 : 그럼 받고 싶음 받아.

 

젖은 혀끝이 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그의 목소리가 물소리와 함께 가까워졌다 멀어지길 반복하며 울려 퍼졌다.

 

계속 울리는 벨 소리가 마치 재촉하는 것 같아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류 부장 : MC, 백기녀석… 어디… 도망갔나?

병원에서… 그를 찾을 수가 없네…. 옥상은… 잠겨있더라고.

 

끊어지는 말이 목덜미에 닿는 그의 숨결 속에서 흐릿하게 들렸고, 나는 그에게 지쳐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그의 귀에 가져다 댔다.

 

MC : 선배! 류 부장님이 선배를 찾아요!

 

나는 어떤 사람이 장난스럽고 나른하게 웃는 것을 들었고, 가냘프면서도 섬세한 키스는 여전히 이어졌다.

 

백기 : 류 형, 저 병원에 있어요. 도망 안 갔어요.

 

그의 목소리는 유난히 차분했지만, 매혹적인 시선은 이 추위를 더욱 감각적으로 만들었다.

 

백기 : 저 지금 중요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지금은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고, 그의 뜨거운 숨결과 손길만이 느껴졌다.

 

백기 : 끊을게요.

 

백기 : 계속할게.

 

거의 동시에 나는 항복하듯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러 끊었고, 그는 만족스러운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오른손을 풀어 내 손가락 사이에 넣었고, 우리는 함께 부드러움 속으로 빠져들었다.

 

화면이 어두워지자, 흐릿한 불빛 속에 그의 가장 밝은 눈동자만이 남았고, 꽉 쥔 두 손과 경련으로 일그러진 옷 주름이 비쳤다.

 

백기 : 널 좀 더 느끼게 해줘.